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와 중증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돕기 위해 채무 감면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원금의 극히 일부만을 상환하더라도 잔여 채무 전체를 면제해 주는 청산형 채무조정의 대상 범위를 현행보다 3배 이상 넓히기로 확정하면서, 금융권 전반에 걸친 채무 구조조정의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이달 내로 청산형 채무조정 제도의 지원 대상 채무 원금 기준을 기존 1500만원 이하에서 5000만원 이하로 대폭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번 조치는 개인회생이나 파산 절차를 통해 이미 원금의 최대 90%를 감면받은 차주 중에서도 특히 상환 능력이 현저히 낮은 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원 대상에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해 70세 이상의 고령자, 중증장애인, 그리고 부모의 채무를 상속받은 미성년자 등이 포함된다.
해당 제도의 핵심은 채무자가 조정된 채무액의 50% 이상을 3년간 성실히 분할 상환할 경우, 남아 있는 잔여 빚을 전액 면제해 주는 데 있다. 이를 실제 상환 비율로 환산하면 전체 원금의 약 5% 수준에 불과하다. 기존 제도하에서는 원금 1500만원을 기준으로 75만원가량만 갚으면 나머지 1425만원을 탕감받을 수 있었으나, 향후 기준이 5000만원으로 높아지면 250만원만 상환해도 4750만원의 채무를 면제받게 된다.
현재 신용회복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신용회복 지원협약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약 7000개에 달하는 협약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개정안에 대한 동의 절차를 밟고 있으며, 이달 중순까지 과반의 찬성을 얻어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포용적 금융 정책 기조에 따라 이번 개정안이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조치를 통해 정책 수혜자가 연간 5000명 수준에서 약 2만명까지 4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지원 기준이 3000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당국이 기준치를 5000만원까지 상향한 배경에는 지난해 10월 도입된 새도약기금과의 형평성 고려가 작용했다. 새도약기금이 7년 이상 장기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취약계층 채무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제도 간의 정합성을 맞추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현 정부가 표방하는 사람 중심의 금융 지원책을 구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한계 상황에 내몰린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탈출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채무 감면 폭과 대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가가 결국 부채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확산되어 상환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대출 원리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성실 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및 그들이 느낄 심리적 박탈감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원금 규모가 5000만원에 달하는 취약계층의 경우 과거에는 일정 수준의 경제적 능력이 있었으나 질병이나 갑작스러운 사고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현재의 파산 상태에 이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아니라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최소한의 상환 의지를 보인 이들에 한해 사회 복귀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제도의 본질적인 취지임을 강조했다. 정부는 향후 제도 시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보완책을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