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는 조용했다. 조문객들의 발걸음도, 인사도 모두 낮았다. 그러나 그날 빈소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말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유시민의 눈물이었다.
정치는 감정을 숨기는 영역이다. 특히 이성과 논리로 상징되던 인물에게 눈물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시민의 눈물은 가벼울 수 없었다. 그것은 개인적 상실을 넘어, 한 시대를 함께 건너온 동지에 대한 애도였고, 정치가 품고 있던 어떤 무게의 해체였다.
이해찬은 한국 정치에서 특이한 궤적을 그린 인물이다. 대중적 인기보다는 구조를, 순간의 환호보다는 제도를 택했다. 그는 늘 비판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만큼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타협하지 않는다는 평가와 고집스럽다는 비난은 늘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유시민의 눈물은 그 확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해 온 사람의 것이었을 것이다. 함께 토론했고, 함께 논쟁했으며, 때로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질문을 놓지 않았던 관계. 정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권력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공유했던 동지였다.
이해찬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퇴장이 아니다. 그것은 사상과 철학을 중심에 두었던 정치의 한 축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빈소는 조용했지만, 공기는 무거웠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한 명이 떠난 것이 아니라, 한 방식의 정치가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정치인을 평가로 기억한다. 공과 과, 찬성과 반대, 성공과 실패로 나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분류가 무색해진다.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는 그 시대에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는가.”
이해찬은 그 질문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언제나 논쟁의 한가운데, 책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길에는 침묵이 많았고, 말보다 깊은 눈물이 있었다.
유시민의 눈물은 그 모든 시간을 대신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애도였다. 빈소에서 정치는 잠시 말을 멈췄고, 한 시대는 그렇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