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어느 날 갑자기 지도 위에 등장한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미뤄졌던 국가 균형발전의 과제를 정면으로 끌어안은 결과물이었고, 그 중심에는 이해찬 전 총리의 집요한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세종시를 단순한 행정 편의 도시로 보지 않았다. 그는 수도권 과밀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세종시는 개발 정책이 아니라 국가 운영 체계를 바꾸는 정치적 결단으로 추진됐다. 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였다.
세종시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권 교체와 정책 수정,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세종시는 여러 차례 흔들렸다. 그때마다 이해찬은 타협보다 설득을, 속도보다 방향을 택했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국가 이익을 앞세운 선택이었다. 정치적으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의 세종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자족 기능 부족, 교통 문제, 행정 비효율에 대한 지적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모든 논쟁은 세종시가 실제로 ‘작동하는 국가 실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세종시가 없었다면 행정 분산과 국가 균형발전은 여전히 선언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의 정치는 호불호가 분명했다. 강한 언어와 고집은 때로 갈등을 낳았다. 그러나 정치의 평가는 인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남긴 결과로 이루어진다. 세종시는 그가 남긴 가장 분명한 정치적 유산이며, 그의 노력이 도시라는 형태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정치는 지나가도 구조는 남는다. 세종시는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국가의 균형은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끈질긴 노력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