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판결이 곧바로 국민의 납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건희 여사 관련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서 내려진 ‘일부 무죄’ 판결이 바로 그렇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단순하다.
사건의 주요 의혹 상당 부분은 무죄, 그러나 권력 주변에서 오간 금품과 영향력의 그림자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법원은 증거와 법리를 이유로 선을 그었지만, 그 선은 지나치게 정교했고, 그래서 더 차갑게 느껴진다.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는 원래 결과가 아니라 구조를 묻는 질문이다.
권력 주변에서, 공식 직함은 없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정책·인사·자금의 흐름 가까이에 있었다면,
그 자체가 이미 공적 검증의 대상이다.
그러나 법정은 늘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의심은 있으나, 입증은 부족하다.”
문제는 이 대목이다.
입증 책임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국민이 보아온 정황과 상식의 축적은 한꺼번에 법정 밖으로 밀려난다.
법은 냉정해야 하지만, 그 냉정함이 반복될수록
사법은 공정이 아니라 거리감으로 기억된다.
특히 이번 판결이 남긴 가장 큰 여운은
‘무죄’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은 여백이다.
왜 그토록 많은 인물과 사건의 교차점에 김건희라는 이름이 반복되는가,
왜 의혹은 늘 주변에서 맴돌다 법정 문턱에서 멈추는가.
이에 대한 사회적 설명은 끝내 제시되지 않았다.
정치는 책임의 영역이고,
사법은 증명의 영역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 둘 사이에서 국민의 신뢰로 유지된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분노보다도 허탈에 가깝다.
“결국 또 여기까지인가”라는 체념 말이다.
‘일부 무죄’는 법률적 표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완결되지 않은 심판이다.
판결로 사건은 일단락될 수 있으나,
의문까지 함께 종결되지는 않는다.
사법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할 때,
정치는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하고,
권력은 더 엄격하게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국정농단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