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가총액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그룹이 도합 21조 원이 넘는 역대급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이 지난 6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대기업들이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력 방어 대신 주주가치 제고로 노선을 급선회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10일 공시한 2025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보유 중인 자사주 1억 543만 주 가운데 82.5%에 해당하는 8,700만 주를 올해 상반기 중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10일 종가 기준으로 약 1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삼성전자는 2024년 11월 발표한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 중 일부를 지난해 소각한 데 이어, 이번에 남은 자사주 대부분을 일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날 SK그룹의 지주사인 SK(주)도 이사회를 열고 발행 주식 총수의 약 20%에 해당하는 1,469만 주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의결했다. 금액으로는 약 5조 1,000억 원 규모로, 국내 지주사 중 역대 최대 수준이다. SK(주)는 전체 보유 자사주 약 1,798만 주 중 임직원 보상용 등을 제외한 물량 전부를 소각 대상에 포함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6일 시행된 3차 상법 개정안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풀이된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새로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분은 1년 6개월 이내에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이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이나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통한 지배력 확대에 활용해 온 관행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재계에서는 삼성과 SK의 이 같은 행보가 다른 주요 그룹사로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날 KCC가 발행 주식의 13.2%를 소각하기로 했고, 롯데지주와 SK네트웍스 등도 잇따라 소각 행렬에 동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코스피 시장의 고질적인 저평가 요인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대규모 자사주 소각이 기업의 자금 여력을 위축시키거나 향후 M&A(인수합병) 등 미래 투자 재원 확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실적 개선에 따른 풍부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주주환원과 시설 투자를 병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기업 경영권 방어에 취약점을 만들 수 있다는 재계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대기업발 자사주 소각 릴레이가 국내 증시의 밸류업으로 직결될지, 혹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비용 증가로 이어질지는 향후 주주총회 표 대결과 추가적인 제도 보완 여부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