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첫 총파업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으며 생산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노사 간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회사는 파업 시 발생할 수 있는 천문학적 피해를 막기 위해 주요 반도체 생산 라인의 가동률을 선제적으로 낮추는 조치에 들어갔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부터 생산 설비를 안정적인 상태로 전환하는 이른바 웜다운(Warm-down)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는 파업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가동 중단에 대비해 장비를 서서히 식히거나 가동 수준을 조절하는 비상 대응 절차다. 반도체 공정은 한번 멈추면 재가동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특성을 지닌다.
생산라인 현장에서는 긴박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평택캠퍼스 D램 생산 라인에서는 전용 물류 장비에 보관 중이던 약 1만5000개의 웨이퍼 보관함을 외부로 반출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신규 웨이퍼 투입량도 엄격히 제한됐다. 장비 내 온도와 압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위주로 공정을 재편하고, 비핵심 공정의 가동은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생산량 조절은 그 자체로 실질적인 손실을 의미한다. 신규 웨이퍼 투입이 제한되면서 기존에 확보한 주문 물량 대응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파업이 실제로 강행될 경우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이 최대 100조 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노조 측은 18일간 파업 시 하루 평균 1조 원씩 최대 30조 원의 손실을 경고했으나, 라인 정상화 기간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이를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내부에서는 노사 자율 해결을 강조하던 기존 기류에 변화가 감지됐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이 우선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긴급조정권은 노조법에 따라 발동 시 노조가 30일간 파업을 즉시 중단해야 하는 강력한 제도다. 김 장관은 전날 오전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대화 해결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반도체 산업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김정관 장관은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김 장관은 전날 저녁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파업 발생 시 긴급조정권 발동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쟁국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장 입지를 넓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글로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대만 경제일보 등 외신들은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AI 서버용 메모리 공급 부족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변수가 공급망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공급망 안정성을 최우선 지표로 삼는 만큼, 장기화되는 갈등은 삼성전자의 대외 신인도에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파업을 막기 위해 노조에 대화를 요청한 상태다. 노조는 이날 오전 10시까지 전영현 대표가 직접 구체적인 안건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며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명분으로 공권력 투입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노사 협상은 분수령을 맞았다. 향후 노조의 수용 여부와 정부의 긴급조정권 실제 발동 여부에 따라 반도체 생산 차질 규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