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의료 현장이 정부에 즉각적인 구조 대책을 요구했다. 저출산과 의료사고 부담, 낮은 수가가 겹치면서 분만을 맡는 병의원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이유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는 지난 6일 성명을 내고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산과 전문의를 보호하고 분만 인프라를 유지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협회는 분만 인프라 위축을 단순한 의료기관 경영 문제가 아니라 산모와 신생아 안전을 흔드는 국가적 위기로 규정했다.
협회가 제시한 핵심 요구는 수가 현실화, 법적 보호, 응급 이송체계 구축이다. 협회는 산과 전문의가 현장을 떠나면 시설과 장비가 남아 있어도 분만실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분만실은 365일 24시간 의료진과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 필수의료 영역인 만큼 그에 맞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분만 가능 의료기관 감소세도 성명에 담겼다. 협회에 따르면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2013년 706곳에서 2024년 445곳으로 줄었다. 의원급 분만기관은 2014년 376곳에서 2024년 178곳으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전국 250개 시군구 가운데 77곳에는 분만기관이 없고, 60곳에는 한 곳만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기본 분만 수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대폭 올리고 정책수가도 300%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분만은 환자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의료진 대기와 시설 유지 비용이 상시 발생하는데, 현행 보상체계는 이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기관보상제 도입도 요청했다. 분만 건수만 기준으로 보상하는 방식으로는 저출산 지역의 분만기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협회는 분만실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지역 필수의료 인프라라는 점을 반영해 대기 비용과 시설 유지 비용을 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요일 낮 시간 분만에 야간수가를 준용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분만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지만 인력 운영 부담은 휴일과 야간에 더 커진다. 협회는 현장 운영의 특수성을 수가 체계에 반영해야 산과 전문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응급 제왕절개와 고위험 분만 대응을 위한 지원도 쟁점이다. 협회는 야간과 휴일 응급 제왕절개가 산모와 태아 생명을 좌우하는 필수 진료라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초빙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후출혈 대응에 필요한 추가 약제와 처치도 포괄수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산모 초음파와 자궁수축검사 급여 인정 기준 완화도 제시됐다. 협회는 이들 검사가 산모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급여 인정 횟수를 늘리면 임산부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분만병원의 수입 보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응급 이송체계에 대해서는 국가 단위 컨트롤타워 구축을 요구했다. 협회는 지역 분만기관과 상급종합병원, 신생아중환자실, 119 이송 체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병상 정보와 가용 의료진, 신생아 치료 가능 여부가 따로 움직이면 산모와 태아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법 리스크 해소 요구도 강하게 제기됐다. 협회는 불가항력적 분만 사고에 대한 기소와 형사처벌 면책이 법제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만은 예측하기 어려운 응급 상황이 많고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책임 위험이 커지면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분만 현장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분만 인프라 유지를 위해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부족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배상책임 부담을 줄이는 대책이 마련돼도 형사처벌 위험과 야간·휴일 대기 부담, 낮은 수가 구조가 그대로라면 분만기관 감소를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다.
분만 인프라 문제는 지역 격차와도 맞물려 있다. 분만기관이 없는 지역에서는 산모가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고, 응급 상황에서는 이송 시간이 곧 위험 요인이 된다. 시설과 장비를 확충하더라도 산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으면 실제 분만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협회는 분만을 수익에 따라 유지하거나 철수하는 사업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분만을 생명 유지 인프라로 인식하고 산과 전문의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분만 수가와 형사책임, 응급 이송체계를 둘러싼 논의가 현장 이탈을 막을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가 남은 쟁점이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