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하루 1천만 원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거나 출금하면 금융회사가 해당 거래 내용을 금융정보분석원에 자동 보고한다. 한 번에 1천만 원을 거래하지 않더라도 같은 날 여러 차례 나눠 거래한 현금의 합계가 기준금액에 도달하면 보고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고액 현금거래가 보고됐다는 이유만으로 탈세나 불법 자금거래로 판단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과 불법 금융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와 의심거래보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두 제도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보고 기준과 절차, 활용 목적에는 차이가 있다.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는 일정 금액 이상의 현금거래가 발생하면 금융회사가 거래 정보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보고 기준금액은 동일 금융회사에서 동일인 명의로 하루 동안 발생한 현금 지급액 또는 영수액이 각각 1천만 원 이상인 경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금 입금액과 출금액을 구분해 계산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같은 은행에서 하루 동안 현금 600만 원을 입금하고 다시 500만 원을 입금했다면 입금 합계가 1천100만 원이므로 고액현금거래보고 대상에 해당한다.
반면 현금 600만 원을 입금하고 500만 원을 출금한 경우에는 입금액과 출금액을 단순 합산해 1천100만 원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각각의 거래 방향에 따라 보고 기준 충족 여부를 판단한다.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는 실제 현금이 오가는 거래를 대상으로 한다.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돈을 이체하는 일반적인 전자금융거래는 현금 입출금과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계좌이체로 1천만 원을 송금했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고액현금거래보고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계좌이체를 포함한 금융거래라도 자금세탁이나 불법 자금거래가 의심되는 사정이 있다면 별도의 의심거래보고 대상이 될 수 있다.
의심거래보고제도는 금융회사가 거래금액뿐 아니라 거래 형태와 목적, 고객의 직업 및 거래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불법 재산이나 자금세탁 관련 의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제도다.
고액현금거래보고가 일정 금액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제도라면 의심거래보고는 거래의 비정상성과 의심 사유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현금 1천만 원 미만의 거래라고 해서 자금세탁방지 관련 확인이나 보고 대상에서 반드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복적인 분할거래다.
하루에 현금 1천만 원을 거래하면 보고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피하기 위해 거래금액을 여러 차례로 나누거나 여러 계좌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거래를 분할했다는 사실만으로 의심거래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는 거래의 반복성, 고객의 평소 거래 형태, 자금의 출처와 목적 등 여러 사정을 함께 검토한다.
특히 합리적인 거래 목적 없이 보고 기준을 회피하려는 정황이 나타난다면 의심거래보고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
고가 차량이나 중고차를 현금으로 구매하는 경우에도 거래 경위에 대한 확인이 이뤄질 수 있다.
자동차 구매 자체가 불법이거나 현금 결제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액 현금을 인출하거나 입금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가 자금의 출처와 사용 목적을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거래도 마찬가지다.
주택이나 상가의 계약금을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해서 곧바로 불법 거래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는 계약금과 잔금의 지급 경위, 거래 당사자, 실제 거래가격 등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
거래금액이 크거나 자금 흐름이 복잡한 경우에는 금융회사의 고객확인 절차뿐 아니라 부동산 관련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나 세무상 소명 문제가 별도로 발생할 수 있다.
가족이나 지인 사이의 자금거래도 거래 목적에 따라 법적 성격이 달라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송금하거나 가족 간 계좌로 자금을 이동했다는 사실만으로 증여세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증여인지, 빌려준 돈인지, 생활비나 교육비 지급인지 등에 따라 세법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금전대차라면 차용증 작성 여부뿐 아니라 실제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 당사자의 상환 능력 등 거래의 실질이 중요하다.
계좌 명의만 바꾸거나 가족 계좌를 거쳐 자금을 이동시킨다고 해서 자금의 출처에 대한 확인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금 사용이 많고 카드 결제가 적은 경우에도 그 사실만으로 탈세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현금 사용은 합법적인 결제 수단이며, 개인의 소비 방식만으로 세금 탈루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신고 소득과 자산 취득 규모, 소비 내역 등에 현저한 차이가 있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면 과세당국의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소득보다 현금 지출이 많다는 사실 역시 단독으로 불법행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기존에 보유한 저축이나 상속재산, 증여받은 자금, 대출금 등 합법적인 자금으로 지출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거래금액 자체보다 자금의 형성과 이동 과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여부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고액현금거래보고와 의심거래보고 정보를 받아 분석하고, 법령상 요건에 따라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관계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금융정보분석원에 거래 정보가 보고됐다고 해서 해당 거래가 자동으로 세무조사나 형사수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고는 자금세탁방지 체계의 일부이며, 실제 위법행위 여부는 관련 법령과 증거에 따라 별도로 판단된다.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개인이나 사업자에게는 현금거래 자체를 피하는 것보다 거래 목적과 자금 출처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보관하는 일이 중요하다.
고액의 현금을 인출해 차량을 구매했다면 매매계약서와 대금 지급 내역을, 부동산 계약금을 지급했다면 계약서와 영수증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족 간 금전거래도 실제 거래 성격에 맞는 자료를 남겨두면 향후 자금 출처나 증여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경우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계약서나 영수증을 보관한다고 해서 모든 거래의 적법성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자금 흐름과 거래 내용이 문서에 기재된 사실과 일치해야 한다.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는 현금거래를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 정보를 금융당국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반복적인 분할거래 역시 금액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를 회피하려는 목적과 다른 의심 정황이 확인된다면 별도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정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