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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조 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 진입하나…금융권 반발에 정부 결정 유보

정한영 기자 | 입력 26-11-02 09:50



550조 원에 육박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공단의 참여를 허용할지를 놓고 금융권과 정부, 노동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퇴직연금의 기금형 운용 확대를 추진하면서도 국민연금의 참여 방식과 범위에 대한 결정을 미루자 논쟁의 무대가 국회로 옮겨졌다.

정부는 지난 10월 29일 발표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에서 금융기관 개방형과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기금형 퇴직연금 모델을 제시했다. 다만 최대 쟁점이었던 국민연금공단의 시장 참여 여부는 확정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국민연금의 참여를 둘러싸고 노사정과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남아 있어 국회 입법 과정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11월 중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연내 국회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의 참여 문제가 법안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의 순기능을 고려해 적정한 수준의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참여 범위는 입법 과정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금융권은 국민연금의 진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4개 금융협회는 2024년 10월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사업 참여에 반대하는 공동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은행과 증권, 보험업계는 퇴직연금 사업의 수익구조와 고객 기반이 서로 다르지만 국민연금의 시장 참여 문제에서는 공통된 우려를 제기해 왔다.

핵심은 공정경쟁이다.

국민연금이 대규모 기금 운용 경험과 공적 기관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퇴직연금 시장에 진입하면 민간 금융회사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의 참여가 기존 사업자의 입지를 축소하고 장기적으로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논리다.

논쟁이 커지는 배경에는 퇴직연금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43개 퇴직연금 사업자가 관리하는 적립금은 약 542조 원이다. 이 가운데 은행권이 275조 5천억 원으로 전체의 50.8%를 차지한다.

나머지 시장에서는 증권사와 보험사 등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금융회사에 장기적인 자산관리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시장 확대에 따른 이해관계도 크다.

정부가 퇴직급여의 사외적립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관련 법률 개정을 전제로 2028년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 2029년에는 10인 이상 99인 이하 사업장, 2030년에는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사외적립 의무화를 확대한다.

기업 내부에 적립하던 퇴직급여가 외부 금융기관이나 기금으로 이동하면 퇴직연금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의 참여 방식은 크게 직접 운용과 외부위탁운용관리 방식으로 구분된다.

국민연금이 별도의 퇴직연금 기금을 직접 운용한다면 기존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와 가입자 및 적립금 유치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

반면 외부위탁운용관리인 OCIO 방식은 다른 기금의 자산운용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구조다. 이 경우 직접적인 가입자 유치 경쟁과는 사업 형태가 다르지만 민간 자산운용사와의 경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시장에 참여하는지 여부뿐 아니라 어떤 업무를 맡고, 어디까지 운용 권한을 행사하는지가 중요하다.

국민연금의 투자 성과를 퇴직연금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2025년 19.9%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은 6.47%였다.

두 수치만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운용 성과가 크게 앞선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자금의 성격과 운용 기간, 위험 감수 수준이 서로 다르다.

국민연금은 장기적인 연금 지급을 목적으로 대규모 자산을 운용한다. 반면 퇴직연금은 개별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관리하며 가입자의 선택과 퇴직 시점, 상품별 운용 조건 등에 영향을 받는다.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운용에 참여한다고 해서 기존 국민연금기금과 동일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선임연구위원도 지난 9월 발표한 "초고령사회 다층노후소득을 위한 퇴직연금제도 개편"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참여에 따른 실익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기금과 퇴직연금은 운용 목적과 허용 위험 수준이 달라 같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적용하기 어렵고, 별도의 운용조직과 전문인력,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기존 운용 경험을 활용할 수 있더라도 추가 비용 없이 퇴직연금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정부 개편안 발표 당일 국민연금의 기금형 퇴직연금 참여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근로복지공단이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인 "푸른씨앗"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까지 참여할 경우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역할 구분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반면 기존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해 왔음에도 장기 수익률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은 금융권이 답해야 할 문제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퇴직연금의 최근 5년과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각각 3.29%, 2.64%에 머물렀다.

퇴직연금 적립금 상당 부분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집중된 구조도 장기적인 수익률과 관련해 지적돼 왔다.

가입자의 노후자산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것과 장기간 운용을 통해 실질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은 모두 중요한 과제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운용 실패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자산 증식 측면에서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공공기관이 기금을 관리하면서 민간 금융회사의 운용 역량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푸른씨앗은 민간 전문기관에 자산운용을 위탁하는 구조다. 2023년 6.97%, 2024년 6.52%, 2025년 8.67%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했다.

공적 기관이 기금의 운영을 맡더라도 실제 자산운용에서는 민간 금융회사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푸른씨앗의 운용 성과 역시 가입 대상과 자산배분, 투자 위험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과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금융권이 국민연금의 진입에는 반대하면서 새로운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에는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논쟁의 대상이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단독 또는 컨소시엄을 통해 별도의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와 대형 금융그룹이 은행, 증권, 자산운용 계열사의 역량을 결합해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중소형 금융회사들은 자본과 전문인력 확보에 따른 부담을 고려해 공동 출자나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 사업에 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이 확대되면 기존 금융회사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의 국민연금 진입 반대가 공정경쟁을 위한 문제 제기인지, 기존 사업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참여를 허용할 경우에는 공적 기관에 적용되는 규제와 민간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반대로 참여를 제한한다면 기존 금융회사들이 낮은 장기 수익률과 운용 비용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금융회사의 사업 영역이면서 동시에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위한 자산이다. 시장의 경쟁구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업자의 이해관계와 가입자의 이익을 구분해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국민연금 참여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국회 논의를 통해 제도 설계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앞으로 입법 과정에서는 국민연금의 참여 범위와 운용 책임, 민간 금융회사와의 경쟁 조건, 가입자 보호 장치 등이 함께 다뤄질 예정이다.

542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논쟁이 국회로 넘어간 가운데, 국민연금의 진입을 허용할 것인지에 앞서 가입자의 수익률과 노후소득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운용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남았다.

정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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