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30일 기준금리를 연 1.25%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이후 추가 조정 없이 경기와 물가 흐름을 살피기로 한 것이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판단과 향후 금리 인상 시기가 금융시장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본은행은 29일부터 이틀간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통화정책 운용 방향을 논의했다. 현재 단기 정책금리는 연 1.25%로, 지난달 연 1.0%에서 0.25%포인트 인상된 수준이다.
일본은행은 지난해부터 이어온 금융완화 축소 기조 속에서 금리를 단계적으로 올려왔다. 올해 6월 정책금리를 연 1.0%로 높인 데 이어 9월에는 1.25%까지 인상했다. 현재 금리는 1995년 이후 약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이번 회의의 핵심은 지난달 금리 인상이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데 있다. 금리 상승은 물가 압력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과 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특히 일본 경제는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 정책에서 벗어나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일본은행은 물가와 임금 상승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정책금리를 조정해 왔다.
일본은행이 주목하는 지표는 소비자물가와 임금 상승률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과 낮은 물가상승률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2013년부터는 물가상승률 2% 달성을 핵심 목표로 삼아왔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2% 물가 목표의 지속적인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인 에너지·식품 가격 상승과 임금 인상에 따른 지속적인 물가 상승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하는 또 다른 변수는 일본의 내수 경기다. 기업들이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가운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얼마나 회복되는지가 소비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시중 대출금리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금리 상승은 엔화 자산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의 금리 결정과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는 엔·달러 환율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일본의 금리가 상승하고 미국의 금리가 하락하면 양국 간 금리 차이가 축소되면서 엔화 강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환율은 국제 자금 흐름과 경기 전망, 위험자산 선호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유지하더라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시장 전망에서는 12월 금융정책결정회의가 다음 금리 조정 시점으로 거론됐다.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는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엔화 가치가 움직이면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경쟁하는 자동차와 기계, 전자제품 등 주요 수출산업의 가격 경쟁력에도 변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금리 상승에 따른 국제 자금 이동 역시 금융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장기간 낮은 금리로 조달된 엔화 자금이 해외 금융자산에 투자돼 온 만큼 일본의 금리 인상은 일부 투자자의 자금 운용 전략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금리 인상 자체가 곧바로 대규모 자금 회수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영향은 금리 조정 폭과 속도, 시장의 사전 예상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은행의 이번 결정은 9월 금리 인상 이후 경제 상황을 점검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앞으로는 물가상승률 2%의 지속 가능성과 임금 상승, 가계 소비 회복 여부가 추가 금리 조정의 핵심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간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해 온 일본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이어가는 가운데, 물가 안정과 경기 부담 사이에서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올릴 수 있을지가 남은 쟁점이다.
김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