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 관련해 자신의 임기 안에 절차를 마무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수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농어민들의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안에는 가입 신청을 추진하지 않고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농어민 간담회에서 CPTPP 가입 문제를 언급하며 “임기 내에는 거의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입 신청 이후에도 회원국들의 동의와 협상 등 여러 절차가 남아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대통령은 “가입을 신청한다고 바로 승인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협정 가입을 검토하더라도 신청과 실제 가입은 별개의 단계라는 의미다. CPTPP는 기존 회원국과의 협의 및 시장 개방 관련 협상을 거쳐야 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가입을 신청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회원국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농어민들이 협정 가입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안에는 가입 신청을 하지 않고 농어민들과 충분히 소통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언으로 정부의 CPTPP 가입 추진 일정은 당분간 속도 조절에 들어가게 됐다. 다만 가입 자체를 공식적으로 철회하거나 향후 협상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CPTPP는 일본과 호주, 캐나다, 멕시코, 베트남, 싱가포르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회원국 사이의 관세 장벽을 낮추고 상품과 서비스, 투자 및 디지털 통상 분야의 교역 규범을 마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한국의 CPTPP 가입 문제는 수출시장 확대와 농수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두 가지 쟁점을 함께 안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기업에는 새로운 시장 접근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농어업 분야에서는 수입 농수산물과의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특히 농축산물과 수산물은 관세 인하 수준과 품목별 개방 조건에 따라 국내 생산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협정 가입을 추진할 경우 기존 회원국들이 요구하는 시장 개방 조건을 검토하고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농어민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이와 관련돼 있다. 수입 농수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경우 국내 생산자의 판매가격과 소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품목에 따라 생산비와 유통 구조가 다른 만큼 시장 개방에 따른 부담도 동일하지 않다.
반면 통상 분야에서는 CPTPP 가입을 통해 역내 공급망과 무역 네트워크를 확대할 수 있다는 논의가 이어져 왔다. 협정 회원국과의 교역 조건을 개선하고 기업의 해외시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입 검토의 배경이다.
그러나 협정의 경제적 효과를 평가할 때는 수출 확대 가능성뿐 아니라 농어업 분야의 피해 규모와 보완대책에 필요한 비용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일부 산업의 이익이 다른 산업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번 간담회에서 농어민과의 소통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이해관계와 연결된다. 협정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농어업 현장의 의견을 듣고 시장 개방에 따른 영향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발언에서 주목할 부분은 가입 신청 시점과 실제 가입 가능 시점을 구분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올해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하면 관련 절차의 시작 자체가 늦춰진다. 이후 신청하더라도 기존 회원국들과의 협의와 협상에는 별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임기 내에는 거의 어렵다”는 발언은 협정 가입이 이미 무산됐다는 선언이 아니라, 현재의 절차와 국내 여건을 고려한 일정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가 향후 CPTPP 가입을 다시 추진할 경우에는 농수산물 시장 개방 범위와 민감 품목에 대한 보호 방안, 피해 지원 대책 등이 주요 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농어업계와의 의견 조율이 실제 가입 협상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간담회에서 연내 가입 신청을 보류하고 농어민과 충분히 소통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