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에서 주요 외교 무대로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참전을 기념한 뒤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귀국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없이 진행된 이번 방중에서는 양국의 역사적 연대와 접경지역 경제협력이 함께 부각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김 위원장이 전날 단둥을 방문해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76주년을 기념하는 일정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기념하는 참전일은 1950년 10월 25일이다.
이번 방문에서 눈길을 끈 장면은 귀국길이었다. 김 위원장은 일정을 마친 뒤 신압록강대교로 이동했고, 중국 최고지도부 인사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비롯한 중국 측 간부들이 교량 중간지점까지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다리 위에서 주변을 살펴본 뒤 교량이 양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교통시설을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닌 양국 협력의 상징으로 제시한 것이다.
신압록강대교는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핵심 교통시설이다. 단둥은 북중 육상 교역의 주요 거점으로, 교량과 도로를 통한 물류 이동이 양국 경제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김 위원장이 직접 이 교량을 이용한 사실은 향후 접경지역 교역과 물류 운영 문제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 됐다. 다만 교량을 통한 물류 확대는 북한 측 도로와 통관시설, 실제 차량 운행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진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따른 교역 제한도 고려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중국 일정에는 산업시설 방문도 포함됐다. 그는 단둥의 버스공장을 찾아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중국 접경지역의 산업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는 점에서 이번 일정은 전쟁 기념행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외교 일정은 중국 최고지도부의 영접 속에 진행됐다. 중국 측에서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왕후닝 주석과 왕이 외교부장 등이 참석했다. 북한에서는 최선희 외무상과 조용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여정 총무부장 등 핵심 인사들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왕후닝 주석은 중국 권력 서열 4위로 분류되는 고위 지도자다. 시진핑 주석은 직접 김 위원장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왕 주석을 통해 인사를 전달했다. 북한 매체는 시 주석의 지시에 따라 환영 연회도 마련됐다고 전했다.
양국 지도부가 공식 일정에서 내세운 공통 주제는 한국전쟁 당시 형성된 관계의 계승이었다.
김 위원장은 단둥의 항미원조기념관을 방문해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기념탑 앞에서 조의를 표한 뒤 북한이 중국군의 참전과 희생을 기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념관에서는 북중 관계를 “피로써 맺어진” 친선으로 표현했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역사적 표현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평가하면서 시진핑 주석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왕후닝 주석 역시 양국의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중국 측의 환영 연회와 고위급 영접은 김 위원장의 방문을 양국 간 공식 외교행사로 대우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방중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기념행사 이후 약 1년 1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의 집권 이후 여섯 번째 중국 방문으로, 시진핑 주석과 직접 회담하지 않고 귀국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베이징 방문이 중국 최고지도부와의 정상외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이번에는 접경도시 단둥에 일정이 집중됐다. 방문 장소도 전쟁기념관과 산업시설, 북중 연결 교량으로 구성됐다.
북한과 중국은 한국전쟁 이후 군사·외교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은 북한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양국 경제협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와 통관·물류 여건 등으로 제약을 받아 왔다.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를 두고 북중 간 경제교류 확대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방문 과정에서 구체적인 신규 경제협력 협정이나 교역 확대 규모가 발표됐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없이 마무리된 단둥 방문에서 북한은 역사적 친선과 경제협력 의지를 동시에 내세웠다. 신압록강대교를 직접 건넌 김 위원장의 행보가 실제 교량 운영과 북중 물류 확대를 위한 후속 조치로 이어질지가 남은 쟁점이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