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투자사기 조직에 가담한 피고인에게서 압수한 현금 2억4000여만원을 국가가 몰수해 피해 회복에 사용하도록 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범죄수익이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가상화폐를 통해 세탁돼 피해자들이 직접 돈을 되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범죄 피해 재산을 몰수해 환부 절차에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1부는 지난 22일 사기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주심은 마용주 대법관이다.
재판부는 A씨의 주거지와 차량에서 발견된 현금 2억4325만원을 범죄 피해 재산으로 판단해 몰수를 명령한 항소심 판결도 그대로 유지했다.
이번 사건은 해외에 조직을 두고 국내 투자자들을 상대로 고수익을 약속하며 자금을 끌어모은 사기 범죄에서 비롯됐다.
A씨는 2024년 6월부터 약 1년 동안 캄보디아에 기반을 둔 투자사기 조직에 가담해 조직원들을 관리하고 범죄수익을 세탁하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조직은 축구 경기 결과에 반대로 베팅하는 이른바 역베팅 방식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이들은 투자금의 원금 손실이 없고 93.75%의 확률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취지로 홍보하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실제 운영 방식은 새로운 투자자에게서 받은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폰지사기 구조였다.
정상적인 투자 수익이 발생하는 것처럼 꾸며 추가 투자를 유도했지만, 신규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수사 결과 A씨는 다른 조직원들과 공모해 2025년 3월부터 5월까지 피해자 321명에게 총 61억2283만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금융당국의 인가나 허가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원금 보장과 수익 지급을 약속하며 자금을 모집한 혐의도 적용됐다.
수사기관은 A씨의 집과 차량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5만원권 지폐가 100장 단위로 고무줄에 묶인 현금 다발을 발견했다. 압수된 금액은 총 2억4325만원이었다.
검찰은 해당 현금이 사기 범죄로 취득한 재산에 해당한다고 보고 법원에 몰수를 요청했다. 피해자들이 민사소송 등을 통해 재산을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관련 법률에 따라 범죄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압수 현금의 법적 성격을 다르게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적용된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관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압수된 현금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상 범죄 피해 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몰수를 명령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결론이 달라졌다.
2심 재판부는 사기 조직이 가상화폐 등을 이용해 투자자들의 돈을 세탁했고, 범죄수익 상당 부분이 해외로 이전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자금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해외에 있는 범죄 조직원들을 상대로 재산 반환을 청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죄수익 대부분이 해외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피해자들이 재산의 흐름을 직접 추적해 권리를 행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도 판단에 반영됐다.
A씨는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 71명에게 각각 25만원씩 지급했다. 총 1775만원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외에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고, A씨 명의의 자동차나 부동산 등 별다른 적극 재산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은 압수된 현금을 몰수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절차에 활용하는 것이 법률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봤다.
형량은 1심보다 6개월 줄어든 징역 4년으로 정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항소심 판단에 법리적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에서 적용된 법률은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이다.
이 법은 일정한 범죄로 피해자에게서 취득한 재산을 범죄 피해 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이나 재산 반환 청구권을 행사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이 해당 재산을 몰수하거나 그 가액을 추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범죄수익 몰수는 범죄자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이익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면 이 법에 따른 범죄 피해 재산의 몰수는 피해자에게 재산을 돌려주기 위한 절차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몰수 판결이 확정됐다고 해서 압수 현금이 즉시 피해자들에게 나눠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환부를 위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른 별도의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또한 이번에 몰수가 확정된 2억4325만원은 전체 피해액 61억2283만원의 약 4%에 해당한다. 압수 현금 전액이 피해 회복에 사용되더라도 피해자들이 입은 손실을 모두 보전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해외 거점 투자사기는 국내 피해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한 뒤 가상화폐나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자금의 흐름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범죄 조직의 핵심 인물과 재산이 해외에 있으면 국내에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피해금 환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 수는 321명에 달하지만, 법원에서 몰수가 확정된 현금은 전체 피해액의 일부에 그쳤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압수 현금을 피해 회복에 활용할 법적 근거는 확정됐다. 그러나 해외로 이전된 나머지 범죄수익을 얼마나 추적하고 환수할 수 있을지, 확보된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어떤 절차로 배분할지가 남은 문제다.
최예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