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국민의힘이 추천한 나경원 의원의 야당 간사 선임 안건을 표결 끝에 부결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이 '자격 미달'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지자, 국민의힘은 "의회 독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국회 상임위원회 운영의 오랜 관례였던 '교섭단체 간사 호선(互選)' 원칙이 깨지면서, 22대 국회가 시작부터 극한의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16일 오후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제출한 나경원 의원의 간사 선임의 건을 상정하고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례에 따라 합의로 추대해야 한다"며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투표에는 추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무소속 의원 등 10명이 참여했다. 결과는 반대 10표, 찬성 0표로 안건은 최종 부결됐다.
범여권은 나 의원의 간사 자격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지난 15일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은 점 ▲배우자가 현직 법원장이라는 점에서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점 ▲과거 내란 옹호성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점 등을 부결의 이유로 들었다. 사실상 야당 간사로서 사법부와 관련된 법안을 다루기에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즉각 "사법 방해이자 의회 폭거"라며 맹비난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성명을 통해 "민주당이 기어코 법사위를 '이재명 로펌'으로 만들려 한다"며 "야당 간사 선임을 표결로 부결시킨 것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폭거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비판했다. 또한, 검찰의 '구형'을 마치 확정판결인 것처럼 문제 삼는 것은 명백한 흠집 내기이며, 추미애 위원장 역시 과거 법무부 장관 시절 각종 의혹으로 고발당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맞받아쳤다.
상임위 간사는 의사일정 협의, 법안 상정 조율 등 위원회 운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동안 여야는 각 당이 추천한 간사를 상호 존중하며 합의로 선임해왔다. 하지만 국회 권력의 핵심인 법사위에서 이 관례가 깨지면서, 향후 법안 심사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야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