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통화스와프'라는 암초에 부딪혀 표류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비자 문제"라는 또 다른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5일 공개된 외신 인터뷰를 통해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들의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 약속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이는 통화스와프에 이어 비자 문제를 협상 테이블 전면에 내세워 미국의 양보를 압박하려는 다각적인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총리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3천5백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와 관련해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프로젝트가 완전히 중단되거나 공식적으로 보류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많은 근로자가 미국에 입국하거나 재입국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우리 근로자 대규모 구금 사태 이후, 불안감을 느끼는 기술 인력과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미국 측의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한 것이다.
김 총리의 이번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직접 역설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통령이 거시 경제 안정을 위한 '금융 안전핀'을 요구했다면, 총리는 투자 실행의 전제 조건인 '인력의 안정적 이동' 문제를 제기하며 투트랙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미국의 과도한 현금 투자 요구가 우리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통화스와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김 총리 역시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투자 약속은 한국 외환보유액의 70%가 넘는 규모로,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 없다면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이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가 이처럼 연일 강경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협상의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자동차 관세 인하의 대가로 대규모 현금 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그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외환시장 불안과 우리 국민의 신변 불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즉,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금융 안정'과 '인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안전장치를 명확히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한미 관세 협상의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우리 정부가 통화스와프 체결과 비자 문제 해결이라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명확히 한 만큼,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없이는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은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의 요구가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협상인 만큼,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원칙에 입각한 협상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