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코앞에 둔 시점, 우체국 택배는 멈춰 섰고 모바일 신분증은 먹통이 됐다. 정부 행정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가 22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그 후폭풍은 전산 시스템에 의존하는 현대 사회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26일 저녁 8시 20분경 대전 소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5층 전산실에서 시작된 불길은 22시간 가까이 이어지다 27일 오후 6시경에야 완전히 잡혔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화재 진압 과정에서 총 647개에 달하는 정부 행정 시스템의 작동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사고로 디지털 정부의 핵심 인프라가 얼마나 물리적 재난에 취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음이 울린 셈이다.
피해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물류 대란이 현실화됐다. 우체국 택배 서버 마비로 배송 기사들은 전용 단말기를 통해 발송인과 수취인의 주소 등 배송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현장의 한 위탁 배달원은 "발송인, 수취인 주소가 다 있는데 전산이 지금 안 돼서 정보가 하나도 안 뜬다"고 토로하며 업무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임을 전했다. 하루 평균 160만 개의 물량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심각한 배송 지연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체국 금융 입출금 거래가 중단되고 전국 곳곳의 무인 민원발급기가 먹통이 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또한, 공항과 병원 등에서 본인 확인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역시 중단돼 많은 이들이 실물 신분증을 다시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정부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부터 순차적으로 복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우체국 금융 서비스나 우편 서비스, 정부24 서비스를 많이 지금 이용하고 계시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들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정상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재발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불에 탄 배터리 384개를 전산실 밖으로 모두 옮겼으며, 28일까지 네트워크 장비를 전면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화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핵심 시스템 96개는 대구센터의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전하여 복원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화재는 국가 핵심 인프라의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표방하며 모든 행정 서비스를 전산화하는 흐름 속에서, 단일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손상이 국가 전체의 행정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이 현실로 증명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데이터 이중화, 삼중화는 물론, 지리적으로 분산된 백업 시스템과 신속한 재해 복구(DR) 시스템의 실효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시스템을 복구하는 것을 넘어, 어떠한 재난 상황에서도 행정 서비스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견고한 "디지털 맷집"을 키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