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언론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밥 멜빈 감독 경질의 배경을 분석하며, 이정후가 1사 만루 상황에서 시도했던 '번트'를 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으로 지목했다. 선수의 한 플레이가 감독 경질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팀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 중 하나였다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은 30일(한국시간), 재신임 3개월 만에 경질된 멜빈 감독의 해임 과정을 되짚는 심층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매체는 "하나의 플레이나 경기가 구단의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여러 결정적인 순간들이 쌓이며 경질에 이르렀다"고 전제하며, 팀의 무기력함을 드러낸 몇 가지 장면을 조명했다.
매체의 샌프란시스코 담당 앤드루 배걸리 기자가 지목한 날짜는 지난 7월 26일이다. 당시 1사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강공 대신 초구부터 번트를 시도했다. 배걸리 기자는 이 장면에 대해 "이정후는 그 순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이정후 스스로 경기 후 "안타가 아닌 병살타를 먼저 떠올렸다"고 인정한 것을 근거로, "팀 전체가 패배주의에 빠진 증거이자 이기는 방법을 잊어버린 팀의 비참한 민낯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외에도 5월 11일, 팀에 아무런 메시지도 주지 못했던 멜빈 감독의 '무의미한 퇴장', 그리고 9월 14일 라이벌 LA 다저스를 상대로 "완전한 '똥덩어리' 같았다"고 표현할 만큼 무기력했던 경기 등이 문제의 순간들로 함께 언급됐다.
'디 애슬레틱'은 고대 그리스의 '소리테스 역설'(자갈을 하나씩 쌓을 때 언제 더미가 산이 되는가)을 인용하며, 자이언츠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쌓여 걷잡을 수 없는 '산'이 됐다고 진단했다. 결국 신임 사장과 장기 계약 선수들을 제외하고 구단이 변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감독 경질뿐이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