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하순에 접어들며 완연한 늦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올해 전국의 산은 예년보다 더디게 가을옷을 갈아입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단풍 소식을 알리는 강원도 설악산이 지난 24일(금) 마침내 단풍 절정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는 30년 평균값인 평년의 절정일(10월 17일)과 비교하면 정확히 일주일이나 늦춰진 기록이다. 올해 설악산의 첫 단풍 역시 평년보다 나흘 늦은 지난 10월 2일에서야 관측됐으며, 통상 첫 단풍 후 2주가 지나면 절정에 이르는 것과 달리 올해는 약 3주 만에 정상 부근이 짙게 물들었다.
이러한 "지각 단풍" 현상은 설악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맘때면 전국 주요 산 정상에서 울긋불긋한 단풍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기상청이 공식 관측하는 21개 주요 산 중에서 현재까지 단풍 소식이 들려온 곳은 6곳에 불과하다. 수도권의 단풍 명소인 서울 북한산 역시 평년(10월 15일경)보다 일주일 늦은 지난 22일에야 첫 단풍이 시작됐다. 소백산(20일)과 가야산(23일) 등도 최근에서야 오색 옷을 입기 시작했으며, 계룡산, 내장산, 지리산, 한라산 등 15개 주요 산은 아직 공식적인 첫 단풍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올가을 단풍이 이처럼 더디게 물드는 가장 큰 이유는 9월 초가을에 나타난 "이상고온" 현상 때문이다. 단풍의 시작 시기는 9월 상순 이후의 기온 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낮을수록 빨라진다. 하지만 올해 9월은 전국 평균기온이 23도에 달해 평년보다 2.5도나 높았다. 이는 기상 관측 이래 역대 두 번째로 더웠던 9월로 기록될 만큼 강력한 늦더위였다. 이로 인해 나뭇잎의 노화를 촉진하는 온도가 제때 형성되지 못하면서 단풍의 시작 자체가 늦어진 것이다.
다행히 10월 하순부터 쌀쌀한 날씨가 찾아오면서 단풍 전선이 뒤늦게나마 속도를 내며 남쪽으로 확산하고 있다. 단풍은 일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질 때 빠르게 물드는 특징이 있는데, 다음 주 초에는 이번 주보다 더 강력한 찬 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예보되어 단풍이 물들고 절정에 들어가는 속도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한편, 주말을 맞아 절정을 맞은 설악산에는 많은 등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산행을 계획할 경우 안전사고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동해안으로 연일 비가 내렸고 평년의 수 배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원 산간 지역은 지반이 매우 약해져 있어 산사태나 토사 유출의 위험이 있다. 또한 내린 비로 인해 등산로가 젖어 있거나 미끄러운 곳이 많아 미끄럼 사고에도 유의해야 한다. 특히 26일 일요일부터는 매우 강한 찬 바람이 몰려오며 산악 날씨가 급격히 추워질 것으로 예보된 만큼, 따뜻한 여벌 옷과 등산화를 반드시 챙기는 등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