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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살 무슬림 시장 조란 맘다니, 미국 민주주의의 새 바람이 될까

이수민 기자 | 입력 25-11-10 08:39



우간다 출신 인도계 무슬림, 정치 입문 4년차의 ‘햇병아리’.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34살의 조란 맘다니는 이제 인구 850만 명이 사는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시장이 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신데렐라 정치인’의 등장이었다.

지난 6월 민주당 경선에서 1%대 지지율로 시작해 돌풍을 일으킨 그는, 본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뉴욕 역사상 첫 무슬림 시장이 된 맘다니는 당선 연설에서 아랍어 인사로 입을 열었다. “아나 밍쿰 와 알라이쿰(나는 당신의 일원이며, 당신과 함께한다).” 그는 “나는 어리고, 무슬림이며, 민주사회주의자이지만 어떤 것에도 사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선 정치적 선언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뉴욕에서 무슬림 신앙을 전면에 내세운 정치인은 없었다. 많은 무슬림 이민자들은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위협을 받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맘다니는 그 금기를 깼다. 그는 “무슬림 정체성을 그림자 속에 두라는 교훈을 배울 생각이 없다”며 “이제는 침묵이 아니라 당당함으로 존재를 증명할 때”라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그를 향한 ‘9·11 연관설’과 ‘급진 좌파’ 공격이 이어졌지만, 맘다니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SNS에 올린 영상에서 “뉴욕에는 100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산다”며 “나는 이 신앙을 숨기지 않겠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를 뽑느냐보다 우리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맘다니는 복지정책을 이유로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정면 돌파했다. 그는 1930~40년대 ‘빨갱이 사냥’ 시기 가난한 이스트할렘에서 7선 의원을 지낸 비토 마르칸토니오를 인용했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자원이 쓰여야 한다고 믿는 게 급진주의라면, 나는 유죄를 인정한다.” 맘다니는 “여러분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도시를 믿을 만큼 용감한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선거운동은 전통적인 정치 문법과 달랐다. 민주당 기성 정치와 거리를 두고, 틱톡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젊은 세대와 이민자층의 불만을 결집시켰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했다. “이 도시는 더 이상 서민이 살 수 없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거비 폭등, 의료비 부담, 어린이 돌봄 비용 등 생활비 문제는 그의 캠페인의 중심이었다. 맘다니는 4년간 임대료 동결, 공공임대 확대, 5세 이하 무상보육, 무상버스 운영 등을 약속했다. 뉴욕의 젊은 유권자들은 이런 구체적인 비전에서 공감대를 느꼈다. 퀸즈의 한 유권자는 “맘다니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사는지 아는 사람”이라며 “그가 약속한 건 정치가 아니라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됐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의 부패와 타협’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맘다니는 “과거 정치를 청산할 문턱에 섰다”며 “이제 우리의 시간이 왔다”고 선언했다.

맘다니의 돌풍은 뉴욕을 넘어 민주당 전체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언론들은 “그의 승리가 트럼프식 정치에 맞서는 새로운 반대 세력의 등장”이라 평가했다. 스웨덴 공영방송의 기자는 “맘다니는 민주당의 르네상스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생활비 부담 이슈가 전국적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맘다니의 등장은 민주당의 ‘실질적 반격’으로 읽힌다. 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두며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나 맘다니의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는 복지 재원을 위해 부유세 신설과 법인세 인상을 제안했지만, 같은 민주당 소속 주지사조차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한 시민은 “그의 공약이 옳지만,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란 맘다니의 당선은 미국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가 과연 무너진 민주당의 신뢰를 회복하고, 트럼프 이후 시대의 새로운 정치적 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뉴욕의 젊은 시장은 지금, 미국 민주주의의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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