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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故 서희원 1주기, 남겨진 사랑은 끝내 시간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2-03 10:23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상실도, 이별도, 죽음조차 결국은 일상의 틈으로 흡수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남의 일’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에게 시간은 위로가 아니라 시험이다. 故 서희원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그리고 구준엽은 그 시험의 시간 앞에서, 끝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희원은 대만 연예계를 넘어 아시아 대중문화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화려한 스타였지만 동시에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과 이혼, 재결합과 재혼까지, 그의 삶은 늘 대중의 시선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그녀가 택한 사랑이 구준엽이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묵직한 의미로 다가온다.

두 사람의 재회는 한 편의 영화처럼 소비됐다.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사랑, 국경을 넘은 결혼, 그리고 짧았기에 더 강렬했던 동행. 사람들은 낭만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결심의 무게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은 아름답게 소비됐고, 비극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서희원의 죽음 이후, 구준엽은 거의 침묵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공식 석상도, 과장된 애도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말이 없다”고 했고,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드러난 그의 심경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극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고백에는 과잉이 없었다. 절규도, 미화도, 감정의 과장도 없었다. 대신 담담함 속에 묻어난 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애도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에도 삶은 계속되지만, 그 삶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 그는 그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상실에도 ‘기한’을 정해놓는다. 언제까지는 슬퍼해도 되지만, 그 이후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한다. 연예인이라면 더 그렇다. 웃지 않으면 이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으면 미련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의 깊이는 사회적 기준표로 재단되지 않는다.

구준엽의 고백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을 놓아주지 못했다는 고백이 아니라, 억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책임이며, 집착이 아니라 존중이다. 함께한 시간이 짧았기에 더 빨리 지워야 한다는 논리는,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서희원의 1주기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공백이 여전히 현재형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관계는 끝나지 않았고, 죽음은 이별이 되었으되 기억을 데려가지는 못했다. 남겨진 자의 삶은 그 기억을 안고 계속된다.

요즘 사회는 ‘빨리 회복하는 사람’을 성숙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진짜 성숙은, 아픔을 서둘러 덮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아픔을 어떻게 품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태도에 있다. 구준엽은 1년 만에 비로소 그 태도를 보여줬다. 말이 적었기에 더 진실했고, 늦었기에 더 무거웠다.

서희원은 떠났지만, 그녀의 삶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현재를 건너고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한 사람의 선택 또한 남았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다. 다만 조용하고, 단단하며, 오래간다. 어쩌면 사랑이란, 끝내 시간을 이기는 감정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1주기는 끝이 아니다. 애도가 마무리되는 시점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1년은 여전히 ‘어제’와 다르지 않다. 구준엽의 고백은 그래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쉽게 끝냈던 것은 아닌지, 상실을 너무 성급히 정리해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
사랑은 떠났어도, 사랑했던 방식은 남는다. 그리고 그 방식이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지탱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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