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의 장기 적자 전망이 현실적인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올해 1분기 4조원에 가까운 적자가 발생한 데 이어 의료개혁 비용을 반영하면 누적준비금이 2029년 소진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보험료 부과체계와 국고지원 확대뿐 아니라 신규 급여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강보험 수입은 22조4416억원, 지출은 26조3405억원으로 집계됐다. 당기수지는 3조8989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말 30조2217억원이던 누적준비금은 26조3228억원으로 줄었다.
다만 1분기 실적만으로 연간 적자 전환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국고지원금이 연중 균등하게 지급되지 않아 1분기에는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올해 상반기 전체로는 약 1조3000억원의 흑자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분기 적자에는 국고지원금 교부 시점에 따른 일시적 요인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건보재정 설명
그럼에도 연간 흑자 규모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2023년 4조1276억원 흑자에서 2024년 1조7244억원, 2025년 4996억원으로 감소했다. 고령화에 따른 진료비 증가 속도가 보험료 등 수입 증가세를 앞지르는 가운데 필수의료 보상 강화와 의료개혁 비용까지 더해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의료개혁 1·2차 실행방안에 따른 재정 투자를 반영하면 건강보험 누적준비금 소진 시점이 기존 2031년에서 2029년으로 2년 앞당겨질 것으로 추산했다. 향후 10년간 누적적자는 기존 전망보다 27조8000억원 늘어나고, 2035년 재정적자 규모는 136조1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인구·임금·의료 이용량과 정책이 일정한 전제에 따라 움직인다고 가정한 장기 추계로, 확정된 재정 결과는 아니다.
지출 증가의 중심에는 노인 진료비와 의료개혁 투자가 있다. 고령층이 빠르게 늘면서 만성질환과 입원·외래진료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필수의료 수가 인상,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전공의 처우 개선과 비상진료체계 지원 등이 건강보험 지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수입 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내 건강보험 재원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4.7%로 일본 42.0%, 대만 65.0%, 프랑스 36.7%보다 높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보험료를 부담할 가입자 기반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보험료율도 법정 상한인 8%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부지원금 역시 쟁점이다. 현행 제도는 일반회계 지원과 국민건강증진기금 지원을 합해 예상 보험료 수입액의 20% 상당을 지원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가 집계한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실제 평균 지원율은 14.3%에 그쳤다. 보험료 인상에 앞서 정부가 재정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복지부는 직장가입자의 이자·배당·임대소득 등 월급 외 소득에 대한 보험료 부과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지난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상정 직전 관련 안건을 제외했다. 복지부는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으나 추가 부담을 둘러싼 가입자 반발이 커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청년층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급여 우선순위 논란도 불거졌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6월 탈모 치료 급여 확대를 하반기 중점 과제로 제시하고 적용 대상과 지원 방식, 예상 재정 규모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현재 유전성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와 대상 연령, 본인부담률은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20~34세 등 청년층에 한정할 경우 연령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전 연령으로 확대하면 필요한 재정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필수의료와 중증질환 보장을 확대해야 할 시점에 생명·신체 기능과 직접 관련성이 낮은 유전성 탈모를 신규 급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탈모가 청년층의 취업과 대인관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제한적인 지원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의 진료비 지급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건보공단과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분기별 수지 변동과 별개로 고령화와 의료개혁 지출이 계속되는 만큼 장기 재정 대책은 피하기 어렵다. 향후 논의에서는 보험료와 국고지원, 지출 효율화 방안을 함께 제시하는 동시에 탈모치료제 등 신규 급여가 필수의료와 중증질환 보장에 앞서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분명히 하는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