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돈독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미국 감세 법안을 두고 심각한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후원자였던 머스크가 트럼프의 핵심 경제 정책을 맹비난하면서 양측의 불화가 전면에 드러났다. 이러한 갈등은 테슬라 주가에 직격탄을 날려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200조 원 이상 증발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머스크는 2024년 제47회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트럼프 캠프에 2억 5900만 달러(약 3516억 원)라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트럼프의 재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스콘신주 대법관 선거에도 2000만 달러를 쾌척해 보수 성향 판사 당선에 기여하는 등 '트럼프 2기'의 숨은 공신으로 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머스크를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하고, 첫 국무회의에서 자신 다음으로 발언권을 주는 등 각별한 신뢰를 보였다. 심지어 130일간의 임기를 마친 머스크를 위해 성대한 고별식까지 열어주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관계와 달리, 머스크와 트럼프 사이에는 내재된 갈등이 존재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직후부터 머스크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의 국세청장 인사를 둘러싼 마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및 숀 더피 교통부 장관과의 공무원 해고 문제 충돌 등 여러 사안에서 삐걱거렸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관세를 놓고도 이견을 보였다. 머스크는 지난 4월 8일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트럼프의 관세 정책 설계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을 향해 "멍청이"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러한 내부의 불씨는 지난 5월 22일 미 하원을 통과한 감세 법안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이 법안은 올해 말 종료 예정인 개인 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주요 감세 조치를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The One Big Beautiful Bill·BBB)'이라 칭하며 자신의 핵심 성과로 내세웠다.
머스크는 백악관 고별식 나흘 만인 지난 3일, 엑스에 "미안하지만, 나는 더는 참을 수 없다. 이 엄청나고 터무니없으며 낭비로 가득 찬 의회의 지출 법안은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이다"라는 글을 올리며 감세 법안에 대한 맹공을 시작했다. 그는 법안 통과를 주도한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의 기자회견 영상에 "이 법안을 실제로 읽는 사람은 누구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야 할 것"이라고 답글을 달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나아가 "여러분을 대표하는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에게 전화해라. 미국을 파산시키는 것은 괜찮지 않다고! 법안을 죽여라(KILL the BILL)"라는 선동적인 글과 함께 영화 '킬 빌(Kill Bill)' 포스터를 게시하며 법안 폐지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머스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머스크의 의견에 동조한 랜드 폴 상원의원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랜드 폴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좋은 정치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BBB는 큰 승자다!"라고 적었다.
미 정치권에서는 머스크의 이러한 '변심'을 철저히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첫 번째 근거는 머스크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테슬라 전체 매출의 30%가 중국에서 발생하며, 중국과 유럽에 부과될 관세는 테슬라 전체 생산량의 50%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 번째 근거는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테슬라는 12억 달러(약 1조 6000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JP모건은 추산했다. 또한, 캘리포니아의 무공해 차량 판매 비중 의무화 규제를 무력화하는 미 상원의 법안은 테슬라에 20억 달러(약 2조 7000억 원) 규모의 이익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극단으로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백악관 회동에서 머스크를 향해 "매우 실망했다"며, "일론(머스크)과 나는 좋은 관계였다. 우리(관계)가 더 이상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놀랐다"고 말했다. 이에 머스크는 엑스에 "내가 없었으면 트럼프는 선거에서 패배했을 것"이라고 응수하며 정면 대결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갈등에 시장은 즉각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머스크가 감세 법안을 비판한 지난 3일, 테슬라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55% 하락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한 5일에는 주가가 14.26% 폭락하며 284.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1520억 달러(약 206조 원) 감소한 결과로, 아젠트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제드 엘러브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악화는 테슬라는 물론 머스크의 다른 회사들에도 위험 요소"라고 지적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번 갈등이 양측 관계와 테슬라 사업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