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공판에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충격적인 진술을 쏟아냈다. 여 전 사령관은 과거 윤 전 대통령에게 "군이 계엄에 투입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군의 실태를 설명하며 무릎까지 꿇었던 적이 있다고 증언함으로써, 당시 대통령과 군 수뇌부 간에 오갔던 계엄 관련 논의의 심각성을 시사했다.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여인형 전 사령관은 본인 또한 관련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특검 및 변호인 측 질문에 대해 증언을 거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내란 특별검사팀이 "윤 전 대통령에게 계엄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유하며 무릎을 꿇은 적이 있느냐"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자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과의 모임에서 "대통령이 대공수사와 더불어 시국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며 긴급명령권을 언급했다"고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계엄에 대한 언급이 나왔는데, 여 전 사령관은 군의 통수권자인 윤 전 대통령이 군의 계엄 준비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윤 전 대통령에게 군의 현실적인 실태를 상세히 설명했다고 증언했다. "군은 계엄 관련 훈련을 해본 적이 없으며, 실제 전시에는 전방에 투입되어 전투를 벌이는 것이 주 임무"이기에,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대비 훈련이나 준비를 해본 적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은 "아무리 헌법이 보장한 계엄이라고 해도 군은 (사회 질서 유지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실태"를 윤 전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보고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어진 질문에서 여 전 사령관은 "술도 한두 잔 들어간 상황"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후, "'일개 사령관이 너무 무례한 발언을 했구나'하는 생각에 윤 전 대통령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진술하여 당시 상황의 엄중함과 증인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다만, 여 전 사령관은 자신의 발언이 계엄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 의사 표명이라기보다는 군의 준비 상황을 보고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한다, 안 한다를 구체적으로 말한 건 아니다"라며, "자신은 반대를 할 계제도 아니었으므로 정확한 준비 상황을 보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계엄 실행을 명령하거나 결정한 상황은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지난주 재판에서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증인으로 나와 계엄 당일 여 전 사령관이 자신에게 방첩사의 체포 활동 지원을 위해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고 증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 측은 "위치 추적은 영장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홍 전 차장의 증언에 반박한 바 있다. 이날 여 전 사령관의 증언 중 홍 전 차장의 진술과 관련된 입장이 나올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나,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 전 사령관의 이번 법정 증언은 윤 전 대통령이 실제로 계엄을 선포하기 직전, 군 최고위급 수뇌부로부터 군의 현실적인 한계에 대한 강한 경고를 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로써 군 수뇌부가 계엄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내란 혐의를 판단하는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