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12일 열린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윤석열 대통령 등 관련자들의 행위를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으로 규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주요 국가기관에 대한 봉쇄와 단전·단수 지시가 담긴 구체적인 문건이 실재했음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이상민 전 장관이 내란 행위를 일으켰다고 판단되는 핵심 증거들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판결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내란 관련 문건을 확인한 직후 이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으며,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화를 나눈 뒤에도 해당 문건을 챙겨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장관이 문건을 꺼내 보는 장면은 영상으로 녹화되어 증거로 채택됐다.
이 전 장관 측은 해당 문건이 단순한 일정표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문건의 내용과 입수 경위, 이후 행적을 종합할 때 일정표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전 장관이 당시 JTBC 등 특정 언론사에 경찰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점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조사 결과 소방청장 등 피고인의 지휘 계통에 있는 인사들은 이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후속 행위를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계엄 선포의 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볼 수 있으며, 단순히 문건을 전달받는 수준을 넘어 직접적인 협조를 지시했다고 결론지었다. 평균적인 법감정만 갖추고 있었어도 당시 상황이 위법함을 인지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법정 내부에서 이 전 장관은 재판부의 판결 요지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시선을 아래로 둔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방청석에서는 재판부가 "내란 집단으로부터 단전·단수 지시를 받았다"는 대목을 읽을 때 짧은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선고 직전까지 변호인과 짧은 대화를 나눴으나 판결 이후에는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내란 행위에 가담했음을 명확히 인정했다. 특히 단전·단수 지시를 내린 행위는 내란의 중요 임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권한을 남용해 언론사에 단전·단수 지시를 내린 부분에 대해서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고, 소방청에 하달된 지시 내용 역시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일부 혐의는 배척했다.
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 관련 문건에 대한 이 전 장관의 과거 증언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내란 행위에 가담한 점과 국회 등에서 허위 증언을 한 점을 종합할 때 비난 가능성이 크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이다.
판결문에는 이 전 장관이 당시 내란 행위를 만류하거나 저지하려고 시도한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 명시됐다. 이번 선고는 계엄 선포 당시 국무위원의 행위가 단순한 정무적 조력을 넘어 내란죄의 구성 요건인 실행 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법원이 공식 확인한 사례로 남게 됐다.
향후 항소심 과정에서 내란 가담의 구체적인 범위와 위법성 인식의 정도를 둘러싼 법리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