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행사하는 핵심 국가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실상 국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사법기관이 되었다. 경찰은 스스로 '국민의 경찰'을 내세우며 수사권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한은 결코 특권이 아니다. 권한이 커질수록 책임은 더욱 무거워지고, 권한이 확대될수록 국민의 감시와 견제 또한 더욱 엄격해지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최근 논란이 된 '장윤기 사건'은 단순한 개별 형사사건이 아니라 경찰 조직 전체의 신뢰를 시험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건 이후 제기된 수사 과정과 증거관리, 내부 대응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국민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현재 제기된 의혹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와 별개로 경찰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력이나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독립된 수사권'이 아니라 '견제받지 않는 수사권'이다.
수사권 독립은 경찰 조직의 숙원이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그 권한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며, 언제든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그 정당성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수년간 반복된 부실수사 논란과 늑장 대응, 증거관리 부실, 내부 비위 의혹은 국민에게 경찰이 과연 확대된 권한을 책임 있게 행사하고 있는지 묻게 만들고 있다. 일부 사건에서는 경찰의 판단이 뒤집히고, 수사 과정이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경찰 스스로 수사권 독립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경찰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의 안일함이다. 조직 보호를 위해 진실을 외면하거나, 잘못을 축소하거나,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문화가 존재한다면 국민은 결코 경찰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법 앞에서 가장 엄격해야 한다는 원칙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수사권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이다. 독립은 면책이 아니며, 자율은 자기 성찰을 전제로 한다. 국민은 더 많은 권한을 가진 경찰보다 더 공정하고 투명하며 책임지는 경찰을 원한다.
이제 경찰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장윤기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모든 의혹은 성역 없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하며, 위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증거관리 체계와 수사 절차를 전면 재점검하고, 내부 감찰과 외부 통제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근본적인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수사권 독립은 결코 완전한 독립이 될 수 없다. 국민이 믿지 못하는 권한은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책임 없는 권력은 결국 스스로 무너질 뿐이다.
경찰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조직을 지킬 것인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대한민국 경찰이 진정으로 수사권 독립을 완성하고자 한다면, 먼저 독립을 요구하기보다 국민 앞에 책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이며, 국민이 경찰에 부여한 권한의 진정한 의미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