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중인 아내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법원의 명령을 받고 있던 50대 전직 경찰관이 제주까지 찾아가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피의자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가정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범행 당시에는 법원이 내린 피해자 보호명령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귀포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50대 전직 경찰관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지난 23일 새벽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아내 B씨의 주거지에 침입해 흉기로 B씨를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주거지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A씨와 B씨는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별도로 생활하고 있었다.
범행 사실이 드러난 과정은 일반적인 살인사건 신고와 달랐다.
경찰에 처음 접수된 것은 피해자인 B씨에 대한 신고가 아니라 피의자 A씨의 실종 신고였다.
A씨 가족은 유서 형태의 쪽지를 발견한 뒤 A씨가 돌아오지 않자 지난 23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A씨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색 과정에서 경찰은 다음 날인 24일 오후 7시께 B씨가 거주하던 서귀포시 남원읍 주택을 찾았다. 경찰이 주거지 내부를 확인하면서 숨져 있는 B씨가 발견됐다.
A씨의 범행 전후 동선도 파악됐다.
서울에 머물고 있던 A씨는 범행 전날 항공편을 이용해 제주에 들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B씨의 주거지를 찾아가 범행한 뒤 곧바로 제주공항으로 이동해 제주를 빠져나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A씨의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해 신병을 확보하고 긴급체포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범행 이전부터 A씨의 가정폭력 문제로 경찰과 법원의 조치가 반복됐던 사실도 드러났다.
A씨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가정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지난해 8월 A씨에게 6개월 동안 B씨의 주거지에서 퇴거하고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임시조치를 내렸다.
해당 임시조치가 끝난 뒤에는 B씨가 직접 법원에 피해자 보호명령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A씨가 B씨의 주거지 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보호명령의 효력은 내년까지 이어지는 상태였다.
하지만 A씨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제주에 있는 B씨의 주거지까지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단순히 인근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유리창을 깨고 집 안으로 침입해 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전직 경찰관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A씨는 과거 서귀포경찰서 관내 지구대 등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했으며 지난해 명예퇴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업무 경험이 있는 전직 경찰관이 법원의 피해자 보호명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접근금지와 피해자 보호명령이 실제 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점도 쟁점으로 남는다.
가정폭력 사건에서 접근금지 명령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번 사건에서는 경찰의 임시조치가 이뤄진 데 이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명령까지 신청했지만 A씨가 이를 위반해 피해자의 주거지에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씨가 서울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제주로 이동하고 피해자 주거지에 침입하기까지 접근금지 명령 위반을 사전에 포착하거나 차단할 수단은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제주에 내려온 시점부터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간 과정, 흉기를 준비했는지 여부와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범행 이후 곧바로 제주를 빠져나간 경위도 확인할 방침이다.
피해자는 가정폭력 신고에 이어 법원에 직접 보호명령까지 신청했지만 결국 숨졌다. 법적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진 고위험 가정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명령 위반을 어떻게 감지하고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것인지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남은 문제다.
양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