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피하고 환자 스스로 치료 방향을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호스피스 신규 이용 환자는 2만6천 명을 넘어섰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등록 건수도 320만 건을 돌파했다.
보건복지부는 5일 중앙호스피스센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과 함께 발간한 "2025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와 "2025 연명의료결정제도 연보"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호스피스 신규 이용 환자는 2만6,020명으로 전년 2만4,318명보다 1,702명 증가했다. 증가율은 6.9%다. 2023년 2만2,394명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통증과 신체적 증상을 완화하고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을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다. 질병 자체의 치료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을 줄이고 남은 시간을 보다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도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호스피스 제공기관은 194개소로 전년 188개소보다 6개소 증가했다.
유형별로는 입원형 호스피스가 104개소로 가장 많았다. 가정형 40개소, 자문형 44개소, 요양병원형 6개소가 운영됐다.
입원형 호스피스는 전문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방식이며, 가정형은 의료진이 환자의 집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문형은 일반 병동이나 외래에서 치료받는 환자에게 호스피스 전문인력이 상담과 돌봄을 지원하는 형태다.
호스피스에 대한 국민 인식도 높아졌다. 대국민 인식도 조사에서 호스피스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83.2%로 전년 80.4%보다 2.8%포인트 상승했다.
호스피스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89.9%,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93.1%였다. 호스피스 전문기관 이용 만족도는 94.7%로 전년 94.3%보다 0.4%포인트 높아졌다.
이러한 수치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지도와 이용 의향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조사에서 이용 의향을 밝힌 사람이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는 거주지역과 의료기관 접근성, 환자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미리 기록하는 제도의 이용도 증가했다.
2025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규 등록 건수는 49만9,961건이었다. 2018년 2월 제도 시행 이후 누적 등록 건수는 320만1,958건에 달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향후 자신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중단등결정과 호스피스 이용에 관한 의사를 미리 작성하는 문서다.
작성자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작성 이후에도 언제든지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즉시 치료를 중단하거나 모든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은 의료진이 환자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판단하는 등 법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를 충족해야 이행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 등록도 늘었다. 지난해 신규 등록 건수는 2만9,557건으로 누적 등록 건수는 18만5,952건에 이르렀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담당 의사와 상담한 뒤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기록하는 문서다. 건강한 성인도 미리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는 작성 대상과 절차에 차이가 있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이행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가 확인된 비율도 상승했다.
2025년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이행 건수는 8만1,220건이었다. 이 가운데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 본인의 의사가 확인된 비율은 52.2%로 집계됐다.
이는 제도 시행 첫해인 2018년보다 19.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을 잃기 전에 자신의 뜻을 문서로 남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이행 건수 전체에서 환자의 사전 문서가 확인된 비율이 52.2%라는 것은 나머지 사례가 모두 환자의 의사에 반해 결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현행 제도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법에서 정한 요건에 따라 가족 진술이나 가족 전원 합의 등의 절차를 거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도 운영을 위한 기관도 확대됐다. 지난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819개소로 전년보다 59개소 증가했다.
연명의료결정 관련 업무를 심의하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 의료기관은 513개소로 전년보다 40개소 늘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연명의료중단등결정과 관련된 절차와 윤리적 문제를 심의하는 기구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예방하고 법적 절차가 적절하게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호스피스 이용 환자와 연명의료 관련 문서 등록이 함께 증가하면서 생애 말기 의료서비스의 접근성과 환자 자기결정권 보장이 주요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환자가 자신의 치료 방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상담과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 늘었더라도 지역별 접근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환자에게 관련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도 살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연명의료중단등결정과 호스피스 이용은 서로 관련이 있지만 동일한 제도는 아니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은 임종과정에서 특정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절차이고, 호스피스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돌봄서비스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통증 완화와 영양분 공급,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법에서 중단을 허용하지 않는 의료행위는 계속 제공돼야 한다.
복지부는 이번 보고서와 연보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운영 현황과 변화 추이를 파악하고 향후 제도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호스피스 신규 이용 환자 2만6천 명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등록 320만 건이라는 수치는 제도 이용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등록 건수 증가에 그치지 않고 환자가 실제 임종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의 상담 역량과 지역별 서비스 접근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