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진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이 취임 직후 안창호 인권위원장을 정면 비판했다. 이 위원은 26일 열린 제11차 전원위원회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힘 있는 권력을 대변하는 인권위원이 되지 않겠다"며 계엄 옹호 논란에 휩싸였던 안창호 위원장을 직격했다.
이 위원은 취임 인사에서 "작년 12월 3일 밤을 잊을 수 없다"며 운을 뗐다. 그는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일, 국민의 한 사람이자 임명을 기다리는 인권위원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고 당시 상황을 언급했다.
특히 이 위원은 계엄 당시 인권위의 미흡했던 대응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계엄령과 관련해 인권위는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인권위원장이 5.18 묘역에서 쫓겨나고 참배도 못 했다는 기사를 접해야 하는 건지 안타까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계엄으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하는 순간을 외면한 인권위란 비판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숙진 위원의 취임인사는 인권위 내부의 갈등 상황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소송에 휘말리고, 경찰의 조사를 받고, 감사를 받는 인권위를 목도하는 저로선 자신의 안위보다 힘없는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셨던 여러분의 자긍심이 훼손되는 건 아닌지 무척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위축되지 마시고 당당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인권위의 인권을 지켜내달라"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날 회의에는 안 위원장을 비롯해 '윤석열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 등을 주도하고 군 장성들을 옹호했던 김용원 상임위원 등이 참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안 위원장이 이 위원의 발언이 끝난 후에도 별다른 언급이나 환영인사 없이 곧바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는 인권위 내부의 심각한 갈등을 방증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여성가족부 차관 출신인 이숙진 위원은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인권위원으로 선출됐으며, 지난 20일부터 3년 임기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취임사가 향후 인권위 내부 갈등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인권 단체들은 이 위원의 발언을 환영하며 인권위의 본연의 역할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 위원의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계엄 옹호 논란 이후 안창호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권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수호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만큼, 이번 갈등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