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한국 증시가 미국발 통화정책 불확실성과 인공지능(AI) 분야의 고평가 논란이라는 이중 악재에 직면하며 급격한 조정을 겪었다. 코스피 지수는 4000선 아래로 내려앉았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민감도가 최고조에 달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반도체 등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매도세가 시장 전반을 강타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양상이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35.63포인트(3.32%) 하락한 3953.62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불과 7거래일 만에 종가 기준으로 4000선을 다시 내준 것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변동성의 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코스피는 지난 14일 대규모 하락 이후 전일 반등에 성공했으나, 하루 만에 더 큰 폭의 낙폭을 기록하며 극심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시장의 이 같은 불안정한 움직임은 근본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재해석과, 수년간 증시를 견인해 온 AI 테마의 성장성에 대한 회의론이 동시에 부각된 결과로 분석된다.
국내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요인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다. 최근 미 연준 인사들의 발언과 시장의 금리 전망에 따르면, 연준이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신중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이 지연되거나 고용 시장이 예상보다 견조하게 유지될 경우, 연준이 금리 인하의 횟수나 폭을 축소할 수 있다는 "속도 조절" 신호는 투자자들의 위험 자산 선호 심리를 빠르게 냉각시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반영된 다음 달 금리 동결 가능성이 한 달 전 0%에서 57.1%까지 급등한 사실은 이러한 시장의 기대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금리 인하 폭이 축소될 경우, 시중 유동성 공급의 감소와 기업 자금 조달 비용 증가 우려는 성장주 중심의 국내 증시에 특히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핵심 악재는 "AI 버블" 논란의 재점화다. 간밤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의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대규모 AI 투자에 대한 "수익화" 의문이 커진 것이 발단이 되었다. 엔비디아, AMD, 오라클 등 AI 관련 핵심 종목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였으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단순히 실적에 대한 일시적인 불안감을 넘어, 초대형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과 재무 구조의 건전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AI 관련 자금 흐름이 과거 닷컴 버블 시기의 "판매자 금융" 구조와 유사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으며, 과도한 자본 지출이 향후 현금 흐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러한 글로벌 기술주 조정 분위기는 한국 증시의 대장주인 반도체 투톱에 직격탄이 되었다. 삼성전자는 2.78% 하락하며 10만 원 선을 다시 반납했고, SK하이닉스는 5.94% 급락하며 60만 원 선 아래로 밀려났다. 코스닥 지수 역시 2.66% 내린 878.70을 기록하며 900선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는 AI 관련 테마주와 성장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 시장의 특성상 글로벌 기술주 부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7.30원 상승한 1465.30원에 마감했다. 미국 금리 인하 속도 조절 가능성으로 달러 강세 압력이 높아진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도세가 원화 약세를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원화 가치 하락과 환율 불안정성은 외국인 자금 유출을 가속화시키고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의 조정 국면이 단기적인 심리적 충격에 그칠지, 아니면 거시경제적 불확실성과 AI 기술주의 고평가 논란이 결합된 구조적 조정의 시작일지에 대한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코스피 급락 사태는 투자자들이 단순히 기술주의 성장 잠재력만을 추종하기보다,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와 기업의 실제 수익 창출 능력, 그리고 산업 생태계 내 자금 순환 구조의 건전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