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눈부신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 화려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가장 소중한 가치 하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바로 **"미안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사과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잘못이 드러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 변명이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오해였다", "상대방도 잘못했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들이 이어진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책임을 줄일 방법부터 찾는다.
정치권에서도, 기업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심지어 우리 일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잘못보다 해명이 먼저이고, 반성보다 자기방어가 앞선다. 진심 어린 사과는 찾아보기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잊을 것이라는 기대만 남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화가 점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도 큰 불이익이 없고, 피해자의 상처보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정의가 바로 서기 어렵다. 피해자는 두 번 상처받고, 공동체의 신뢰는 조금씩 무너진다.
사과는 결코 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이며, 인간다운 품격이다. 진심 어린 사과는 법이 강요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움직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성장하고, 신뢰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반대로 끝없는 변명과 거짓말, 책임 회피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더 큰 불신을 낳는다. 신뢰를 잃은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말조차 믿어주는 사람이 없게 된다.
법은 죄를 판단할 수 있지만, 양심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법원은 형벌을 내릴 수 있고, 수사기관은 범죄를 밝힐 수 있다. 그러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는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양심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성공보다 책임을, 승리보다 양심을, 변명보다 사과를 더욱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사회가 아니라, 책임을 끝까지 회피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가 살아 있고, 법의 권위도 존중받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을 배운다. 어른들이 끝없이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본다면, 다음 세대 역시 그것을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반대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본다면, 책임과 배려가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제도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양심, 한마디의 사과, 작은 책임감이 결국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진심이 담긴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는 수많은 변명보다 강하다.
우리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존중받고, 반성하는 사람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으며, 피해자의 아픔이 먼저 공감받는 사회. 그런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이며, 정의로운 공동체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잘못했을 때 변명부터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먼저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격을 만들고, 사회의 신뢰를 세우며, 결국 대한민국의 품격을 결정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변명이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을 끝까지 다하려는 용기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