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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랑한다고, 끝내 하지 못한 말" 사랑은 결국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일이다

이명기 논설위원 (대기자) | 입력 26-09-12 09:23



사람은 참 이상하다.

곁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사람이 떠난 뒤에야 수없이 되뇌곤 한다.

“사랑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많이 후회하는 말은 미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끝내 전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아픈 날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것,
늦은 밤 무사히 들어갔는지 기다리는 것,
밥은 먹었는지 걱정해주는 것,
힘든 날 아무 말 없이 옆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끝까지 응원해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닐 때가 많다.

“당신은 할 수 있어.”
“나는 당신을 믿어.”
“힘들어도 내가 옆에 있을게.”

그 몇 마디가 때로는 세상 어떤 위로보다 큰 힘이 된다.

사랑한다면 많이 응원해주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의심할 때도,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 한 명만큼은 끝까지 그의 가능성을 믿어주어야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도 잘못할 수 있다.

실수할 수도 있고,
때로는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며,
서로의 생각이 달라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일이다.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더 이유를 들어주고,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잘못했다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이해이고 배려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칸트는 인간을 단순히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보았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바꾸려 하는 순간 사랑은 때로 욕심이 된다.

사랑한다면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고,
상대의 꿈을 응원해야 하며,
상대가 나와 조금 다르더라도 그 다름까지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다.

그리고 부부라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세상이 모두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

조건을 따지기 전에 먼저 손을 잡아주는 것.

잘나갈 때만 함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주는 사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왜 그랬어?”라고 몰아세우기 전에
“많이 힘들었지?”라고 물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부부여야 한다.

부부란 단순히 한집에서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서로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며,
때로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인 내 편이어야 한다.

물론 잘못까지 옳다고 말해주라는 뜻은 아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하되,
잘못한 사람 자체를 버리지 않는 것.

밖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한 세상을 만나더라도 집에 돌아왔을 때만큼은 마음 놓고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것.

나는 그것이 부부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잘못했어도 잘못은 함께 고쳐가자.
하지만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까지 버리지는 않겠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니체는 자신의 삶에서 주어진 운명을 단순히 견디는 것을 넘어 사랑하라는 의미에서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애)’를 이야기했다.

사랑에도 아모르 파티가 필요하다.

우리가 만났던 운명을 사랑했다면, 함께 걸어가는 동안 찾아오는 어려움까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좋은 날에만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상대가 실패했을 때,
아플 때,
돈이 없을 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그 사람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행복한 날의 약속보다 힘든 날의 태도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우리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조금 더 기다릴 줄 알게 되고,
조금 더 배려하게 되고,
상대의 좋은 날을 진심으로 응원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질투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이 나보다 앞서가더라도 박수쳐주는 것.

힘들어 쓰러지려 할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는 것.

사랑은 상대를 내 옆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이 희미해진다.

싸웠던 이유도,
서운했던 말도,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도 결국 흐려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뜻했던 순간들은 오래 남는다.

힘들 때 손을 잡아주었던 사람.

아무도 믿지 않을 때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

내가 실수했을 때 야단치기보다 조용히 기다려주었던 사람.

그런 기억은 평생 남는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 사람들은 뒤늦게 생각한다.

그때 왜 조금 더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왜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했을까.

왜 그 사람의 꿈을 더 많이 응원해주지 못했을까.

왜 자존심을 조금만 내려놓지 못했을까.

왜 미안하다는 말을 아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왜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하지 못했을까.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것처럼 다투고,
다음이 있을 것처럼 사랑을 미루며,
언젠가 말하면 될 것처럼 마음을 아낀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다음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곁에 있다면 오늘 말해야 한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많이 응원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함부로 등을 돌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부부라면 더 자주 말해야 한다.

“당신 편이야.”

그 말은 사랑한다는 말만큼 깊다.

세상이 힘들어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서로 실수하고 부딪히더라도,

적어도 두 사람만큼은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따뜻한 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누가 더 옳은지를 끝까지 따지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옳고 그름을 넘어 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안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이 있다면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잘되기를 바라주고,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다.

사랑은 반드시 함께 살아야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사람을 많이 응원했고,
그 사람이 잘되기를 지금도 바랄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이미 우리 삶 속에서 충분한 의미를 가진 것이다.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말은
“사랑했었다”가 아니다.

사랑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오해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내일로 미루다가 끝내 전하지 못한 말.


“사랑한다.”

그리고 그 말보다 어쩌면 더 필요한 말.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많이 응원해주자.

조금 잘못하더라도 한 번 더 이해해주자.

힘들어할 때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자.

부부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자.

사랑은 완벽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부족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응원하며 끝까지 같은 편이 되어가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게 될 것은 누가 더 옳았는지가 아닐 것이다.

아마 이런 기억일 것이다.

내 삶에 한 사람쯤은 끝까지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것이면 사랑은 충분하다.

이명기 대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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