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오·남용을 막기 위해 대한의사협회가 1회 투여량과 투여 간격, 의료진 배치 등을 구체화한 자체 안전사용기준 개정안을 마련했다. 다만 외과계에서는 환자 상태와 수술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은 투여량 제한이 의원급·중소병원 수술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의협은 최근 "의료용 마약류 안전사용기준 강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프로포폴 안전사용기준 개정안을 마련해 의료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현재 확정된 기준은 아니며 의료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세부 내용을 조정하는 단계다.
개정안은 프로포폴 사용 목적을 성인과 생후 1개월을 초과한 소아의 전신마취 유도·유지, 인공호흡 중인 중환자 진정, 수술 및 진단 과정의 의식하 진정으로 구분했다. 사용 목적과 환자의 진정 수준에 따라 투여 및 관리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수술 및 진단 과정에서 의식하 진정을 시행할 때 프로포폴 1회 투여량을 120mg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추가 진정이 필요하면 한 차례 더 투여할 수 있도록 해 최대 240mg까지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의협은 지난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뤄진 프로포폴 처방 777만5,827건을 분석해 기준 설정의 근거로 삼았다. 이 가운데 120mg 처방은 384만3,903건으로 전체의 49.4%를 차지했다. 240mg 이하 처방은 699만6,558건으로 90.0%였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관리 기준도 강화했다. 비교적 짧은 진단 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수술에서도 진정을 관리하는 의사와 환자의 상태를 감시하는 의료진을 두도록 권고했다. 깊은 진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시술이나 수술을 담당하는 의료진과 별도로 진정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하도록 했다.
의무기록에는 환자의 체중과 프로포폴 투여량, 투여시간 등을 상세하게 남기고 환자가 회복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찰하도록 했다. 간단한 시술이나 진단을 위한 투여는 연간 12회 이내로 제한하고 각 투여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2주 이상의 간격을 두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는 2주 안에 다시 투여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했다.
미다졸람이나 케타민 등 다른 마취제와 함께 사용할 때는 프로포폴 투여량을 10% 이상 줄이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전신마취의 유도와 유지는 마취통증의학과 수련을 받은 의료진이 담당하고 기도 유지와 인공호흡, 산소 공급, 심혈관계 소생술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의협은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를 이유로 사용 자체를 과도하게 제한하면 정상적인 진료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 등에서 진료나 신체검진 과정에 제3자인 보조인을 입회시키는 "샤페론" 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관리 강화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문가 단체가 임상 현실을 반영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외과계는 프로포폴 투여량을 획일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민호균 대한외과의사회 교육이사는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 외과에서 시행하는 수술은 프로포폴 투여량이 240mg을 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 이사는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진행하는 수술이 거의 다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포폴은 환자의 체중과 나이, 건강 상태뿐 아니라 수술 종류와 소요 시간, 다른 마취제와의 병용 여부에 따라 필요한 투여량이 달라질 수 있다. 오·남용을 차단할 객관적인 기준과 정상적인 수술·시술을 보장할 임상적 예외를 어떻게 구분할지가 개정안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남았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