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간으로 8일 공개된 미국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 명단에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 없다"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각각 세 부문씩, 총 여섯 개 부문의 후보로 선정되며 한국 콘텐츠의 강력한 글로벌 위상을 다시금 입증했다. 이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장르적 깊이와 대중적 흥행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할리우드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특히 박 감독의 작품은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의 최우수 작품상이라는 가장 권위 있는 경쟁에 뛰어들면서, 과거 아시아 영화가 주로 비영어권 영화 부문에만 국한되었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쩔수가 없다"는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외국어 영화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주연을 맡은 배우 이병헌 역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병헌은 이번 후보 지명을 통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티모시 샬라메("마티 슈프림"), 조지 클루니("제이 켈리"), 이선 호크("블루 문"), 제시 플레먼스("부고니아")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수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된다. 그가 연기한 '유만수' 역은 25년 경력의 회사원이 갑작스러운 해고를 겪으며 재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중산층 가장의 불안과 고군분투를 박찬욱 감독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장르 감각으로 비틀어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것은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으로,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감독상 후보에는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작품상과 주연상 부문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는 K-팝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최우수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 후보에 오르며 콘텐츠 다변화를 입증했다. 이 작품은 디즈니의 "주토피아 2", 픽사의 "엘리오", 일본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등 세계적인 대작 애니메이션들과 경쟁한다. 단순한 만화 영화를 넘어, K-팝 아이돌 문화와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하여 전 세계 젊은 세대의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영화 주제가상 부문에 수록곡 "골든"을 후보로 올리며 음악적 성과까지 인정받았다. 아울러 골든글로브가 최근 신설한 시네마틱 앤드 박스오피스 어치브먼트(흥행성취상) 부문에도 후보로 지명되며 예술성과 대중적 흥행력을 동시에 겸비했음을 과시했다. 이는 K-팝이라는 강력한 소프트 파워가 결합된 콘텐츠가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얼마나 폭발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한편,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할리우드 영화 "부고니아" 역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의 작품상을 포함해 남우주연상(제시 플레먼스), 여우주연상(에마 스톤) 등 총 세 개 부문 후보로 발표됐다. 이로써 한국 원작을 둔 두 편의 작품이 골든글로브의 주요 경쟁 부문에서 맞붙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특히 "부고니아"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 없다"와 같은 뮤지컬·코미디 작품상 부문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원작의 힘을 통해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향방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전초전으로 여겨진다. 한국 콘텐츠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 등을 통해 비영어 영화 부문에서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번처럼 작품상과 연기상 등 주류 부문에서 다수의 후보를 배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작품상 부문 경쟁작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최다인 9개 부문 후보)와 같은 강력한 작품들이 포진해 있어 수상 여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내년 1월 11일(현지시간)에 개최될 예정이다. 이날 시상 결과는 향후 전개될 미국 영화 시장의 흐름과 K-콘텐츠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