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전면전 공포가 국내 금융시장을 집어삼켰다. 4일 코스피는 역대 최대 낙폭을 갈아치우며 12% 넘게 폭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17년 만에 1500원 선을 넘어섰다. 주식과 외환시장이 동시에 붕괴하는 이른바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되면서 시장은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698.37포인트(12.06%) 하락한 5093.54로 장을 마쳤다. 전날 7.24% 하락하며 6000선이 무너진 지 하루 만에 5100선마저 내준 것이다. 오전 중 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된 데 이어, 오후에는 지수 급락으로 거래를 20분간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으나 추락하는 지수를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환시장 상황도 전례 없는 위기 국면이다. 이날 오전 2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거래 종가 대비 19.6원 급등한 1485.7원에 야간 거래를 마감했다. 특히 장중 한때 1506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선언에 따른 유가 급등 우려가 원화 가치를 사정없이 끌어내렸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은 기록적인 폭락세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11.74% 급락한 17만 2200원으로 밀려나며 ‘17만전자’ 붕괴 위기에 처했고, SK하이닉스 역시 9.58% 하락한 84만 9000원으로 주저앉으며 ‘90만닉스’ 선이 무너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하루에만 수조 원어치의 주식을 내던지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닥 지수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전 거래일 대비 159.26포인트(14.00%) 폭락한 978.44에 마감하며 심리적 지지선인 1000선을 내줬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연달아 발동됐으나, 거래 재개 후 오히려 낙폭이 확대되는 등 통제 불능의 양상을 보였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오전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화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증시안정펀드 투입과 외환 당국의 직접 개입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유가 폭등이 실물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경우, 금리 정책 운용마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연쇄 폭락으로 인해 국내 증시의 장기 상승세는 마침표를 찍고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제 봉쇄 여부와 미국 및 이스라엘의 추가 군사 행동 수위에 따라 금융시장의 하방 지지선이 어디까지 밀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