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연임 가능성을 전제로 한 정치권의 불출마 선언 요구를 일축했다. 대통령 연임제가 개헌안에 포함되더라도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없도록 헌법이 막고 있는 만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개헌을 비롯한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개헌 추진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기 위해 연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는 방안을 물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도둑질은 안 하겠다고 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하나"라는 취지로 답했다.
개헌을 추진한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국민과 국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도 이어졌다.
이 발언은 최근 개헌 논의와 함께 불거진 이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 논란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추진하려면 이 대통령이 먼저 연임 불출마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는 이를 제한하는 조항이 이미 마련돼 있다.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개헌안을 제안할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그 효력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 대통령 재임 중 4년 연임제로 헌법이 바뀌더라도 개정된 규정을 근거로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이 대통령의 이날 답변은 정치적 선언보다 현행 헌법 규정을 앞세운 것이다. 개헌 내용과 별개로 자신의 연임 문제는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간담회에서는 중동 정세도 테이블에 올랐다. 최근 정부가 검토에 들어간 호르무즈 해협 군사 기여 방안이다.
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상선의 안전 운항을 위해 군함을 투입하고 있지만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군함을 보낼 경우 전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역시 파병 결정과는 거리를 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반도 대비태세에 큰 손상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 안팎에서는 P-8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 자산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실제 병력이나 군사 자산을 해외에 투입할 경우 임무와 규모뿐 아니라 국회 동의 등 국내 절차도 뒤따르게 된다.
임신중지 의약품인 미프진 도입 문제에서는 한층 구체적인 방안이 언급됐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복지부와 여성계가 관련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면서 초기 2년 동안 병원 안에서 처방과 조제를 실시하고 이후 병원 처방을 받아 외부 약국에서 조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국무회의에서도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을 적극 검토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다만 이날 언급된 방식은 아직 정부의 최종 시행안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구조적 다수"라는 표현을 다시 꺼냈다.
이 대통령은 진보개혁세력이 사회 전체에서는 아직 소수라는 인식을 밝히면서 더 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비판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자신이 말하는 "구조적 다수"가 정계개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구분했다.
남북관계에서는 한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방식과 거리를 뒀다. 북한이 과거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개입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식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외부에 크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북미 관계의 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날 발언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는 개헌 문제였다. 연임제 개헌과 현직 대통령의 재출마를 연결하는 주장에 대해 이 대통령이 헌법 규정을 근거로 선을 그으면서, 개헌 논쟁의 초점은 다시 대통령 임기제뿐 아니라 권력구조를 어디까지 손볼 것인지로 옮겨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