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반 의료기술이 건강보험 체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별도의 평가 기준과 단계적 등재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에도 임시 등재를 허용하고, 임시 등재 기간에 실제 사용 데이터를 쌓아 정식 등재로 이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술의 급여 적정성 평가기준 개발 및 등재방안 마련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는 차의과학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했다.
현재 국내 AI 의료기술은 혁신의료기술 임시 등재제도를 통해 일부 의료 현장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식 건강보험 등재를 위한 별도 평가 기준과 보상체계는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연구진은 AI 의료기술의 특성을 반영한 급여 평가 기준, 수가체계, 사후관리 방안을 함께 검토했다.
연구진은 AI 의료기술이 기존 의료기술과 다르게 작동한다고 봤다. AI 기술은 한 번 도입된 뒤에도 데이터 축적과 알고리즘 개선을 통해 성능이 달라질 수 있고, 의사의 진단이나 판독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의료 행위에 결합된다. 같은 장비나 시술처럼 고정된 형태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별도의 평가 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핵심 제안은 평가유예 신의료기술과 임시 등재제도의 연계다.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은 일정 기간 비급여로 사용되면서 근거를 축적한 뒤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 등재 절차를 거친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임시 등재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면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활용 데이터를 확보하고, 정식 등재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AI 의료기술은 초기 임상근거만으로 효과를 완전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료기관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판독 정확도, 진료 흐름 개선 효과, 의사 업무 부담 감소, 환자 결과 개선 여부 등이 함께 확인돼야 한다. 임시 등재는 이 같은 자료를 제도권 안에서 모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수가 산정 방식도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AI 기술이 의사의 판단을 대체하는지, 보조하는지, 진료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보상 수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 판독 보조인지, 질병 위험도 예측인지, 치료계획 수립 지원인지에 따라 의료현장에서 만들어내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식 등재 이후 사후관리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AI 의료기술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데이터 학습에 따라 성능이 바뀔 수 있다. 연구진은 건강보험 급여나 비급여로 등재된 이후에도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재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발업체 인터뷰에서는 건강보험 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인됐다. 업체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의료기관 도입이 쉬워지고 시장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될 경우 기술 개발과 유지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비급여 방식의 한계도 언급됐다. 비급여는 가격 자율성이 있지만 의료기관 확산과 환자 접근성 측면에서는 제약이 있다. 환자 부담이 커지면 실제 사용이 제한되고, 의료기관도 도입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AI 의료기술이 환자 접근성과 산업 육성 사이에서 균형 있는 보상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봤다.
관련 학회들은 AI 의료기술의 제도권 편입에는 공감하면서도 임상적 근거 확보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AI는 의사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진단과 판독을 지원하는 도구인 만큼,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AI 의료기술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기술 특성을 반영한 별도 분류체계를 마련하고, 임시 등재와 정식 등재를 연결하는 단계적 진입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급여 적용 이후 재평가 체계를 운영하고,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에도 임시 등재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정책 대안을 제시한 단계다. 실제 제도 도입 여부와 적용 범위, 수가 수준, 평가 기준은 정부와 관계 기관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AI 의료기술이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산업 육성 논리와 환자 안전, 재정 부담, 임상근거 확보 사이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았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