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한동안 같은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헤어진 뒤에도 마음 한편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영어 표현 ‘Slice of Life’ 는 ‘삶의 한 조각’, ‘인생의 한 장면’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 사람은 어느 날 관계가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함께 웃었던 날, 다투었던 밤, 기다렸던 시간,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순간까지도 결국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조각이 된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별 앞에서 자주 묻는다.
“나를 정말 사랑했을까.”
“왜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질문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성숙한 이별은 상대방을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내 삶의 한 페이지로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미안함이 남는다. 더 따뜻하게 말하지 못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조금만 참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찾아온다.
하지만 사랑은 후회만으로 기억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 웃었고, 설렜고, 기다렸으며 때로는 아파했다. 그 모든 감정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사랑은 성공과 실패라는 두 단어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인간의 깊은 경험이다.
누군가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랑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계절이라도 서로의 삶에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아마 알게 될 것이다.
떠난 사람을 붙잡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보내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 사랑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내 곁에 없어도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사랑했던 사람을 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잊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억한다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속 한편에 조용히 놓아두면 된다.
‘그 사람도 내 삶의 한 조각이었다.’
그렇게 인정하는 순간, 아픈 기억은 조금씩 추억이 되고 후회는 성숙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다시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 성장하고, 사람을 떠나보내며 또 한 번 성장한다.
사랑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결국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한 조각,
우리만의 ‘Slice of Life’로 남는다.
이명기 대기자(논설위원)
한국미디어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