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 시절에는 사랑이란 서로 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고 싶으면 보고, 그리우면 찾아가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을 지나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나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에는 함께하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떠나는 사람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더 큰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 가끔은 하루가 너무 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다가도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함께했던 시간과 대화, 웃음과 갈등, 좋았던 기억과 아팠던 순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끝났다고 말한다고 바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잊겠다고 다짐한다고 하루아침에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했던 시간만큼 그리움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프다.
그러나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 사람까지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립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선택한 삶이 있다면 이제는 그 선택을 존중하려 한다.
나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 사람의 인생 전부가 아니듯,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역시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길에서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었던 사람일 수 있다.
그 시간이 길었든 짧았든, 진심으로 사랑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인연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헤어졌다고 해서 사랑했던 시간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배려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한 가지를 배우려 한다.
사랑에는 기다림도 있지만 포기도 있고, 포기에는 패배가 아니라 존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떠나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것.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 사람이 나 없이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랑했던 사람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그 행복의 자리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쩌면 이별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해보려 한다.
그녀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어디에 있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살아갔으면 한다.
때로 힘든 일이 찾아와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우연히 서로의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 사람도 잘 살고 있구나.”
그 한마디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 역시 잘 살아야 한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내 삶까지 멈춰 세워서는 안 된다.
인생은 누군가를 만나기 이전에도 존재했고, 헤어진 이후에도 계속된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 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결국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다시 나의 길을 걸으려 한다.
아프면 아픈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그 감정을 억지로 감추지는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 감정에 내 인생 전체를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움의 온도도 조금씩 내려갈 것이다.
사랑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녀에게도 그 권리가 있고 나에게도 그 권리가 있다.
서로의 행복이 더 이상 같은 길 위에 있지 않다면, 이제 각자의 길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멀리서 그 사람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끝나는 사랑도 있다.
그것은 실패한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진심으로 걱정했고, 행복을 바라본 적이 있다면 그 사랑 역시 자신의 삶에 남겨진 소중한 한 페이지다.
나는 그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는 조용히 넘기려 한다.
좋았던 날은 좋았던 날로 기억하고, 아팠던 날은 삶을 배우게 해준 시간으로 남겨두려 한다.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감사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사랑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도 사랑이고,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도 사랑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상대방의 선택을 받아들이며 돌아서는 것 역시 사랑일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이 짧은 한마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어쩌면 수많은 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사랑했던 사람을 미움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여기까지였음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을 존중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조금 아파도 괜찮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덜 아프고, 내일보다 그다음 날 조금 더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누군가를 잊어버려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마음 한편에 두고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지나면 나도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 많이 사랑했다.”
그리고 그다음 말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 사람의 선택까지 존중해 줄 수 있었다.”
그녀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나도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나 역시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느 한 사람이 불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인연은 끝날 수 있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떠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갈 이유까지 함께 가져가지는 않는다.
그러니 오늘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했던 사람을 놓아주는 것은 사랑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잘 살아.”
그 한마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나는 오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제 나 자신의 삶 또한 존중하려 한다.
그것이 이별 이후 우리가 배워야 할 마지막 사랑인지도 모른다.
한국미디어일보
이명기 대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