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이송병원을 지정하고 의료기관의 수용 불가 사유를 구체화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응급의학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의료기관에 환자 수용을 강요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7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기존 개별 구급대 중심에서 광역 단위 상황관리체계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119구급상황관리센터 등이 이송병원을 지정할 수 있게 된다. 중증응급환자의 이송병원이 신속하게 정해지지 않을 경우에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응급의료기관이 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 사전에 알리는 ‘수용불가 사전고지’ 제도도 도입된다. 의료기관별 환자 수용 능력과 진료 가능 기능을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응급의료기관이 환자 수용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보건복지부령으로 구체화될 예정이다. 응급의료 자원이 모두 가동돼 추가 환자에게 적절한 처치를 할 수 없는 경우나 수술 일정 등으로 중증환자에게 지체 없이 최종 진료를 제공하기 어려운 경우 등이 사유로 거론된다.
그러나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 18일 입장문을 내고 개정안이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응급환자 수용 여부는 시설과 장비뿐 아니라 당시 의료진의 수, 병상 상황, 수술 가능 여부, 환자의 중증도 등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의사회는 “시설·인력·장비 부족이나 최종 치료 인력 부재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일률화하고 실시간으로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당한 수용 불가 사유를 입증하지 못해 법적 처벌을 받는다면 현장에 무조건적인 환자 수용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상황은 분 단위로 달라지는 만큼 매시간 수용 불가 사유를 확인하고 보고하는 체계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최종 치료가 불가능한 병원에 특정 환자를 강제로 이송하면 기존에 치료받던 환자와 새로 이송된 환자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송을 지시한 상황실과 실제로 환자를 수용한 의료진 사이의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쟁점으로 제시됐다. 의사회는 수용을 강제한 기관과 의료진 간 책임 소재를 먼저 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응급의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진의 형사책임 면제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진전된 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대한 과실’의 기준이 모호하면 의료진의 법적 불안은 해소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응급의학계는 응급환자 미수용의 근본 원인이 이송병원 지정 방식보다 응급실 과밀화와 병상·인력 부족에 있다고 강조했다. 경증 환자부터 중증 환자까지 응급실로 몰리는 구조와 만성적인 병실 부족을 해결하지 않으면 새로운 환자를 받을 여력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개정안은 앞으로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국회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응급의학계는 후속 시행령과 시행규칙 마련 과정에 현장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