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 9주 이내 사용할 수 있는 임신중지 약물을 이르면 내년 1분기 국내에 도입한다.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관리할 방침이지만, 산부인과 의료현장에서는 일차 의료기관의 진료 여건과 사후관리 체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6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중지 약물의 단계적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식약처의 수입품목 허가 심사가 진행 중이며, 제약사의 보완자료 제출과 물량 확보 등이 차질 없이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내년 1분기 유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입이 추진되는 약물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순차적으로 복용하는 복합제다. 흔히 "미프진"으로 불리지만 국내 허가 신청 제품은 두 성분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임신 유지에 관여하는 호르몬의 작용을 차단하는 미페프리스톤을 먼저 복용하고 24시간에서 48시간 뒤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 미소프로스톨을 복용한다.
허가 신청 기준에 따른 사용 대상은 임신 63일, 즉 9주 이내다. 약물을 복용한 뒤에는 7일에서 14일 이내 의료기관을 다시 방문해 임신중지 여부와 출혈, 감염 등 이상 증상을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안전성 자료를 확보하고 부작용 발생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 초기 2년 동안 의료기관 안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조제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후 사용 결과와 안전성을 검토해 약국 조제 등으로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
의료계에서는 원내 처방·조제 원칙이 일차 의료기관의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임신중지 약물 처방은 산부인과 의원급 의료기관이 상당 부분 담당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 기관 가운데 입원실이나 응급수술·수혈 시설을 모두 갖춘 곳은 제한적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등이 참여하는 안전한임신중절위원회 간사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김희선 산부인과 교수는 약물 복용 이후 출혈과 임신산물 배출이 발생할 수 있어 경과 관찰 방안이 필요하지만, 입원 여부를 기준으로 처방기관을 제한하면 참여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처방기관이 일부 병원으로 한정되면 환자는 장거리 이동과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의료기관이 적은 지역에서는 약물 도입에도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기준이 오히려 제도권 의료기관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약값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제약사가 급여 적용을 신청하면 관련 절차에 따라 검토하고, 초음파 검사 등 진료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는지도 별도로 살펴볼 방침이다. 도입 초기에는 비급여로 처방될 가능성도 있다.
비급여로 운영되면 의료기관별 처방 현황과 사용자의 복용 결과, 합병증 발생 사례를 통합적으로 추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음 도입되는 약물인 만큼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사용됐고 이후 경과가 어땠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등록·보고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비용 문제도 제도권 이용을 좌우할 수 있다. 약값과 검사비가 모두 비급여로 책정되고 처방기관까지 제한되면 온라인 등을 통한 비공식 유통 경로와 비교해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할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약물의 음성적 유통을 차단하고 안전한 사후관리를 제공하겠다는 도입 취지와 충돌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식 도입에 앞서 일정 기간 시범사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고 있다. 6개월에서 1년 동안 실제 처방과 부작용, 응급진료 연계 상황을 살핀 뒤 의료기관 지정 기준과 사후관리 방식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의료진의 진료 선택권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남은 쟁점이다. 종교나 개인적 신념에 따라 인공임신중지 행위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의료진에게 이른바 양심적 거부를 인정하되, 약물 복용 뒤 과다출혈이나 감염 등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정부는 허가 이후 이상사례 수집과 안전성 평가, 환자·의료진 교육자료 마련 등을 위해 위해성 관리계획을 적용할 예정이다.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여부와 처방 가능한 의사의 범위, 응급환자 이송체계, 의료진의 진료 거부 기준은 의료계 협의를 거쳐 구체화할 계획이다.
임신중지 약물의 도입 시점만큼 중요한 문제는 처방 이후의 관리다. 의료기관 접근성과 건강보험 적용, 이상사례 추적, 응급진료 연계 기준이 확정되지 않으면 제도권 도입의 목적과 실제 의료현장 사이의 간격은 좁혀지기 어렵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