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대규모로 공급된 아파트들이 잇달아 재건축 가능 연한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이미 높은 용적률로 지어진 단지는 새로 지어 분양할 수 있는 주택이 많지 않아 재건축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전면 리모델링 역시 공사비와 주민 분담금이 높아지면서 노후 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필요한 시설부터 고치는 방식이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아파트 건축물 17만1185개 가운데 준공 후 30년이 지난 건축물은 4만4503개로 26.0%를 차지했다. 서울은 24.4%였으며 경북 36.4%, 전북 34.4%, 강원 33.7%, 대전 33.5%, 부산 33.0% 등 비수도권 일부 지역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노후 아파트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준공 30년을 건물의 물리적 수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30년은 재건축 추진이 가능한 제도적 기준에 가깝고, 철근콘크리트 골조는 관리 상태에 따라 이보다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주민이 체감하는 노후화는 골조보다 배관과 승강기, 방수, 전기설비, 주차 공간 등에서 먼저 나타난다. 특히 오래된 벽식 아파트는 수도관과 배선이 벽이나 바닥 안에 들어가 있어 교체가 어렵다. 녹물과 누수, 잦은 고장 등 생활 불편이 누적되면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물도 재건축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재건축의 성패는 건물 연령보다 용적률과 일반분양 물량에 좌우된다. 낮은 용적률로 지어진 과거 단지는 층수와 가구 수를 늘려 사업비를 충당할 여지가 있지만, 고밀도로 조성된 1990년대 단지는 추가로 지을 수 있는 면적이 제한적이다. 집을 새로 짓더라도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대안으로 추진되는 전면 리모델링도 비용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존 골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지하주차장을 넓히고 내진 성능을 보강해야 해 시공 난도가 높다. 가구 수를 늘릴 수 있는 범위도 제한돼 일반분양 수익만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올해 9월 기준 전국 152개 단지, 12만1700가구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수 단지가 분담금과 사업 기간을 놓고 고심하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배관과 승강기, 외벽, 방수시설을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주민 공동시설을 추가하는 부분 리모델링이 주목받고 있다. 단지 전체를 비우지 않아도 되고 전면 공사보다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어 재건축 추진이 어려운 단지에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노후 공동주택 정책도 철거와 신축 중심에서 유지·관리 중심으로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단지별 안전 상태와 용적률, 설비 노후도, 주민 부담 능력을 따로 진단하고 장기수선충당금이 제때 설비 교체에 사용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앞으로 급증할 고밀도 노후 아파트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할지가 주택 공급 못지않은 도시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