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포니에서 1990년대 티뷰론과 티코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의 도로를 채웠던 국산 자동차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들 차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산업화와 수출 확대, 중산층의 성장, 가족여행과 청년 문화의 변화를 함께 기록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는 현대자동차 포니가 꼽힌다. 포니는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1975년 12월 생산을 시작해 이듬해 시장에 본격 출시됐다.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로 평가받는 포니는 승용차 대중화의 문을 열었고, 에콰도르 등 해외시장에 수출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조립 생산에서 독자 모델 개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차는 1983년 중형 세단 스텔라를 내놓으며 승용차 시장의 영역을 넓혔다. 스텔라는 포니에 이은 현대차의 두 번째 고유 승용 모델이었다. 1985년에는 스텔라의 고급 트림에서 출발한 1세대 쏘나타가 등장했고, 1988년 2세대 모델을 거치며 쏘나타는 국내 중형차 시장을 대표하는 장수 차종으로 자리 잡았다.
기아 프라이드는 1987년 출시 이후 경제성과 실용성을 앞세워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일본 마쓰다가 설계하고 기아가 생산하며 미국 포드가 판매에 참여한 월드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기아에 따르면 프라이드는 1999년 단종될 때까지 총 145만대가 생산됐으며 절반 이상이 북미 등 38개국으로 수출됐다.
대우자동차는 1986년 르망을 선보였다. 독일 오펠 카데트를 기반으로 제작된 르망은 날렵한 외관과 전륜구동 방식으로 젊은 운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990년에는 대우의 첫 고유 모델인 에스페로가 출시됐다. 이탈리아 디자인업체 베르토네가 참여한 유선형 차체는 당시 국내 세단에서 보기 어려웠던 미래지향적 인상을 남겼다.
1991년 등장한 티코는 국내 경차 시장을 연 대표적인 차량이다. 작은 차체와 경제적인 유지비를 앞세워 출퇴근용과 자영업자의 업무용 차량으로 폭넓게 이용됐다. 외환위기를 전후해서는 실용적인 자동차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이후 마티즈로 이어지는 국내 경차 시장의 기반을 만들었다.
기아가 1992년 출시한 세피아는 기아 최초의 독자 개발 승용차였다. 프라이드를 통해 확보한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차체와 플랫폼 개발 역량을 넓혔다는 점에서 기아의 기술 자립을 상징하는 모델로 평가된다. 세련된 외관과 주행 성능을 앞세워 젊은 층이 선호하는 준중형차로 이름을 알렸다.
코란도의 역사는 제조사 계보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코란도라는 차명은 1983년 거화자동차가 기존 지프 차량에 처음 사용했다. 이후 동아자동차가 1984년 거화를 인수했고, 쌍용그룹이 1986년 동아자동차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회사 이름이 쌍용자동차로 바뀐 것은 1988년이다. 따라서 1983년형 차량을 곧바로 “쌍용 코란도”로 부르는 것은 당시 제조사 변화를 생략한 표현이다.
1996년 출시된 현대 티뷰론은 국산 스포츠 모델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현대차 최초의 독자 개발 스포츠 모델로, 쿠페형 차체와 최대 150마력의 엔진을 앞세워 젊은 운전자들을 끌어들였다. 자동차 동호회와 튜닝, 국내 모터스포츠 문화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포니와 프라이드, 르망, 스텔라, 쏘나타, 에스페로, 세피아, 코란도, 티뷰론, 티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인의 일상에 들어왔다. 이들 차량에 대한 기억은 한때 도로를 달렸던 자동차에 대한 향수를 넘어, 한국 자동차 산업이 독자 개발과 수출 산업으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