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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잊힐 줄 알았다. 가슴을 흔들던 사랑도, 밤새 잠 못 이루게 하던 그리움도, 시간이라는 강물에 조용히 씻겨 내려갈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은 그리움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한때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했던 사람이 이제는 문득 떠올라도 그저 먼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있겠지,
그 한마디로 마음을 달래고 사랑했다는 고백 대신 행복했기를 바라는 나이가 되었다.
참 이상하다.
젊은 날에는 사랑을 붙잡는 것이 용기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말없이 놓아주는 것도 깊은 사랑이었다. 사람은 떠나도 함께 걸었던 계절은 남고, 인연은 끝나도 그 사람이 남긴 온기는 가슴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숨을 쉰다.
이제는 안다.
모든 만남이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사랑을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은 이별을 가르쳐 주며, 어떤 사람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는 것을. 세월이 소란한 그리움을 덮는 날,
나는 더 이상
지난 시간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못다 한 말은 바람에게 보내고 끝내 이루지 못한 약속은 저무는 노을 속에 묻어두리라.
그리고 언젠가
우연히 그대의 소식을 듣는 날에도 흔들리는 마음보다 따뜻한 미소가 먼저 피어나기를. 잊어서 평온한 것이 아니라 그리워도 아프지 않은 날,
그날이 오면
비로소 세월이 나를 안아준 것이리라. 오늘도 나는 가슴 한편에 남은 이름 하나를 조용히 접어 세월의 책갈피에 넣는다. 사랑했기에 아름다웠고, 떠나갔기에 더 깊어졌으며, 돌아오지 않기에
영원히 빛나는 인연도 있으므로. 세월은 사랑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눈물로 부르던 이름을 미소로 기억하게 할 뿐이다.
이명기 논설위원 2026년 가을, 깊어가는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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