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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이제, 내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용서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최예원 선임기자 | 입력 26-10-28 09:33


감성수필 ‘시와 수필, 마음을 걷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많은 인연을 가슴에 품었다.


누군가는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고, 누군가는 믿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또 누군가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 삶을 지나갔다.


나는 그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다.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못했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마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내가 조금 더 이해하면 달라질까, 한 번만 더 용서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수없이 나를 설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용서란 상대방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이 아니라, 상처 입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첫 번째 위로라는 것을.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아직도 아프니?"


대답은 없었다.


다만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 참아온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그토록 마음을 쓰면서도 정작 내 상처에는 너무나 무심했다.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잃어버렸고, 끝까지 믿겠다는 약속 때문에 무너지는 마음조차 외면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너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니?"


아직은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 이해하지 못할 일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을 것이고, 문득 떠오르는 이름 하나에 가슴이 저려오는 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다는 것.


용서는 망각이 아니다.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잘못을 정당화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더 이상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내 남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조용한 결심이다.


이제는 떠나간 사람을 붙잡기보다 내 곁에 남아 있는 삶을 바라보려 한다.


아침 햇살에 감사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미소 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바람이 부는 길을 걷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지금,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해서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깊이 외로워진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찾으려 한다.


남들이 어떻게 기억하든, 누가 나를 오해하든, 누군가 내 진심을 끝내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는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했는지 알고, 얼마나 오랫동안 견뎌왔는지 알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을은 깊어가고 있다.


나뭇잎은 마지막까지 가지를 붙잡지 않는다. 때가 되면 조용히 떨어져 자신이 돌아갈 자리를 찾아간다.


어쩌면 사람의 인연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아무리 아름다웠던 계절이라도 영원히 머물 수는 없기에, 떠나보내야 비로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오래된 마음의 문을 닫는다.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거울 속 나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참 많이 힘들었지."


"그동안 정말 애썼다."


"이제는 네가 행복해져도 된다."


살다 보면 다시 사랑할 날도 있을 것이고, 다시 누군가를 믿으며 웃을 날도 찾아올 것이다.


혹여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내 인생의 가치는 누군가의 사랑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까.


이제, 내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누군가의 과거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으로.


상처를 부여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처마저 삶의 한 페이지로 넘길 줄 아는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내 자신에게 묻는다.


"이제는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겠니?"


한참을 침묵하다 조용히 대답한다.


"그래. 이제는 나를 용서하자."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용서는 누군가의 사과가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외면했던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야 할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 그만 아파하자.


이제 그만 미안해하자.


그리고 이제는, 나를 위해 살자.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게도 다시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봄에는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2026년 가을의 깊은 밤, 지나온 삶을 내려놓으며.


이명기 논설위원, 감성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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