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 판정에 대해 추가 불복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싸고 시작된 투자분쟁에서 한국 정부가 부담할 배상액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약 1,530억 원으로 확정됐다.
법무부는 28일 엘리엇 ISDS 환송중재 판정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추가적인 불복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관계부처와 정부 대리 법률사무소,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다.
법무부는 “관계부처와 정부대리 로펌, 외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판정문을 분석한 결과, 추가로 소요될 비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9월 30일 환송중재 판정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판정부는 정부가 엘리엇에 약 4,849만 달러와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도록 했다. 원화 환산 배상액은 약 1,530억 원이다.
이번 분쟁의 출발점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다.
엘리엇은 이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관여했고, 이로 인해 투자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 중재를 제기했다.
분쟁의 핵심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국제투자협정상 국가책임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해당 행위와 엘리엇이 주장한 투자 손실 사이에 법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정부는 그동안 중재 판정에 대응해 법적 절차를 진행해 왔으나, 이번 환송중재 결과에 대해서는 추가 소송의 실익과 비용 등을 고려해 불복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배상 책임을 둘러싼 국제중재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정부가 중재판정에 대한 불복을 포기하면서 남은 문제는 실제 배상금 지급 절차와 재정 부담이다. 배상 원금은 약 660억 원이지만, 장기간 이어진 분쟁으로 지연이자와 소송비용 등이 더해지면서 전체 부담액은 원금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번 사건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자체를 국가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영국 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당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개입을 근거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국가기관의 의사결정 개입과 투자자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최종적인 책임 판단을 가른 것이다.
정부가 추가 소송을 포기한 만큼 앞으로는 배상금 지급 시기와 재원 마련 방식이 쟁점으로 남는다. 특히 정부의 과거 의사결정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을 국가 재정으로 부담하게 된 상황에서, 관련 책임을 어떻게 규명하고 유사한 분쟁을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예원 선임기자